(11) 예니 할머니의 일주일

2016.05.15 15:27 입력 2016.05.15 22:51 수정
호이스헐름·코펜하겐|박은하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부근 호이스헐름에 사는 전직 교사 예니(왼쪽 두번째)가 지역 엄마들의 육아모임에 나가 동요를 가르쳐주고 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부근 호이스헐름에 사는 전직 교사 예니(왼쪽 두번째)가 지역 엄마들의 육아모임에 나가 동요를 가르쳐주고 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 소도시 호이스헐름의 하늘이 모처럼 갰다. 얼어붙은 호수가 반짝반짝 빛났다. 예니 리베스(66)는 오전 9시 무렵 창밖으로 호수가 내다보이는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아기를 데려온 젊은 엄마 4명과 직원이 예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마룻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노래를 시작했다. “씨-씨-씨-씨-예-예-예-예-예-니-예-니” 예니가 양팔을 비행기 날개처럼 양옆으로 활짝 벌리자 아기들과 엄마들도 율동을 따라 했다. “오늘 온 아이들 중 아빠가 파일럿인 남매가 있거든요.” 이 지역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전직 교사 예니는 젊은 엄마들의 육아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한 주를 시작한다.

예니가 동화책을 읽어주고 함께 블록을 갖고 놀아준 덕분에 늘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엄마들은 한숨 돌릴 수 있다. 덴마크에는 지역마다 간호사를 보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여성들을 그룹 지어 출산 전까지 건강을 관리해주는 제도가 있다. 엄마들은 이 제도를 통해 친분을 쌓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모임을 만들어 매주 만나고 있다. 예니는 지난해 가을부터 이 모임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하고 있다.

[행복기행](11) 예니 할머니의 일주일

예니는 아기를 볼 때마다 표정이 싱글벙글했다. 교직 경험을 살려 노래나 율동을 가르쳐주고 아이들을 함께 돌보되, 젊은 엄마들의 육아 고민에 섣불리 참견하는 일은 없었다. 엄마들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저 듣기만 했다.

예니는 “세상은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이를 인정하고 적응하는 것이 은퇴 후 인생이 편해지는 첫 번째 비결”이라고 말했다.

■번 돈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덴마크

예니는 37년 동안 교사로 일하다 2014년 말 퇴직했다. “퇴직 1년 전부터 고민을 많이 하고 동료들과 얘기도 나눴어요. 내 일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한다고 자부해왔는데 퇴직 후에도 그럴 수 있을지 걱정됐어요. 골프를 치거나 함께 여행 다니자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런 쪽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요.”

경제적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았다. 덴마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노인’보다 ‘연금생활자’란 표현을 많이 썼다. 직장에 다녔든 아니든, 모든 국민은 만 65세가 넘으면 기본연금으로 매달 4741크로네(약 85만원)를 받는다. 미혼자는 여기에 4773크로네를, 기혼자는 2228크로네를 더 받는다. 예니는 추가로 교원연금도 받는다. 덴마크 직장인들은 일하는 동안 월급의 5~10%가량을 내고 퇴직 후 직장연금으로 돌려받는다. 전 국민 무상의료에, 65세가 되면 추가로 교통비와 난방비, 주택비, 치과진료비를 보조받을 수 있다.

이렇게 돌려받는 돈의 액수를 합하면 대개 직장에 다닐 때의 소득 절반이 넘는다. 예니가 받는 연금은 세금을 제외하면 매달 1만7427크로네. 약 307만원에 해당한다. 은퇴 전 소득의 80% 수준이다. 현재 덴마크 직장인의 소득세율은 50.9%다. 연금생활자들도 세금을 낸다. 이 나라에서 병에 걸리거나 우울한 노인은 있을 수 있어도, 억지로 일하거나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노인은 상상할 수가 없다. 덴마크 국민이란 사실은 노후가 편안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후의 풍요로운 생활을 자신이 낸 세금에 대한 보상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예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내 연금은 젊은 사람들 세금으로 받는 돈이니까 은퇴 후의 시간과 돈을 나만을 위해 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은퇴 후 봉사활동에 나선 이유다. 월요일 오후에는 난민들의 덴마크어 학습을 돕는 모임에도 참여한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해보니 내가 지역에 뭔가를 베푼다기보다는 얻어가는 것이 더 많더군요.” 예니는 돌보던 아기와 눈이 마주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니의 이웃 리즈 페테센이 집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자기 집의 역사와 추억에 관해 말하고 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예니의 이웃 리즈 페테센이 집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자기 집의 역사와 추억에 관해 말하고 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예니의 이웃인 리즈 페테센(67)의 집에 찾아갔다. 예니와 리즈는 직장 동료 사이인 남편들을 통해 알게 돼 40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다. 리즈는 오랜 친구를 따라 들어온 낯선 손님을 반갑게 맞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안내해 줬다. 부엌 냉장고에 손주들 사진을 붙여놓은 것은 세계의 모든 할머니들의 공통점인 듯했다. “손자손녀가 3명인데 곧 4명이 될 거예요.” 손주들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나는 것 같았다.

리즈의 집은 전형적인 ‘북유럽 옛날 집’이라고 했다. 마당이 딸린 2층집에 아기자기한 방이 여러 개 있었다. 다락방에는 덴마크 국기가 대롱대롱 달린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고, 집 곳곳에 미술품과 작은 조각들이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기념품으로 산 것이나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것들이다. 리즈가 보여준 액자 속 판화에는 오래전의 마을 풍경이 담겨 있었다. “1920년대에 이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의 모습이라고 해요. 굉장하지 않아요?”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갖는 마을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집안 곳곳을 안내하는 것도 리즈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결혼해서 따로 사는 자녀들도 연말이면 리즈의 집에 모인다.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 리즈의 집은 리즈의 삶이다. 더 시간이 흘러 파티를 하는 것이 힘들어질 때도, 거동조차 불편해질 때도,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리즈를 이 집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리즈의 부엌 냉장고에 붙어 있는 손주들의 사진과 손주들이 남긴 낙서

리즈의 부엌 냉장고에 붙어 있는 손주들의 사진과 손주들이 남긴 낙서

■노인을 위한 ‘마을’

세계 대부분의 개발된 나라에서는 이미 고령화가 진행 중이고, 각국은 노인을 돌보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인들에게 어떤 곳에서, 어떤 형태의 집에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이냐는 생존의 문제다. 덴마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공동주거 형태가 있다. 보펠레스카브(Bofællesskab), 통칭 코하우징(cohousing)이라 불리는 공동주택이다.

보펠레스카브가 생겨난 것은 1960년대였다. 보딜 그로에라는 여성이 신문에 “아이들에게는 100명의 부모가 필요하다”는 글을 쓴 것이 ‘마을 논쟁’을 촉발시켰다. 가족 규모가 줄고 공동체가 흔들리고 개인주의가 심해지는 현실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50여 가구가 보딜 그로에의 글을 계기로 힘을 합쳐 1967년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코하우징 마을들이 들어섰고, 건축가들은 현대적인 마을공동체에 어울리는 집들을 짓기 위한 아이디어들을 내놨다. 코하우징은 미국과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인의 8%가량이 현재 보펠레스카브에 살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시작한 운동이었으나 이내 노인문제의 해법으로도 떠올랐다.

인구가 밀집한 코펜하겐에는 1980년대부터 고령화 사회를 염두에 두고 공동주택들이 지어졌다. 사회와의 연계가 끊어진 채 양로원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거부하는 노인들이 많아져 사회문제가 되던 무렵이었다.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고독과 우울도 이슈로 불거졌다. 연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노인이 행복하려면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과 ‘동네’라는 사회적 공간이 모두 필요했다.

지방정부와 주택조합이 힘을 모아, 주민들은 각각 독립된 건물에 살지만 마당을 비롯한 공동의 공간을 갖는 주거단지들을 만들었다. 덴마크의 이런 공동주택단지들은 ‘시니어 코하우징’의 세계적인 모델이 됐다. 2000년대 이후 건설된 공동주택단지들은 노인 전용이라기보다는 나이든 주민과 젊은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살도록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려면 노인 주거단지를 지나도록 하고, 노인 주거단지를 공원 같은 공동 공간 바로 뒤에 배치하는 식이다. 코펜하겐에만 이런 코하우징 단지가 200개가 넘는다.

호이스헐름 마을회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예니는 산책모임을 만들어 주 2회 집 근처의 숲과 호수를 산책한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호이스헐름 마을회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예니는 산책모임을 만들어 주 2회 집 근처의 숲과 호수를 산책한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공동주택과 함께 덴마크에는 도시마다 훌륭한 시설을 갖춘 양로원도 있지만, 노인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자기 집에 머물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정부도 연금생활자들이 삶의 연결고리들을 끊지 않고 노후를 집에서 보낼 수 있게 지원해준다. 이를 위해 개인 가정에 간호사나 복지사를 파견하는 재가복지서비스가 발달해 있다. 예니와 리즈처럼 자기 집에 살며 동네 주민과 어울릴 수 있다면 덴마크에서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환경인 셈이다. 호이스헐름의 숲과 호수는 옛날에는 귀족의 휴양지였고 지금도 이따금 영화 촬영지로 활용된다. 예니와 리즈는 주변 할머니들과 산책 모임을 만들어 토요일마다 오전 7시에 숲과 호수를 거닌다.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할머니는 1인 기업가

리즈의 집을 구경하는 내내 쿵쿵쿵 소리가 들렸다. 리즈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곳은 지하실. 리즈의 남편 요안(67)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요안은 전직 목공교사로 퇴직 후 지하실에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취미다. 호기심 넘치는 요안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짜고짜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알파벳이 아닌 문자가 타이핑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덴마크 노인들은 은퇴하면 1인 기업을 합니다. 다들 시간과 돈이 넘치거든요.” 요안이 유쾌하게 웃으며 지하실 한쪽을 가리켰다. 리즈의 작업대가 있었다. 리즈는 버려진 해도(海圖)를 재활용해 공책과 수첩을 만드는 일을 한다. 퇴직 전에 산업안전관리 업무를 했던 리즈는 유해물질이나 폐기물에 관심이 많았다. 손재주도 좋아 젊은 시절 재봉틀로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다. 여름철마다 방문하는 별장이 마침 항구도시에 있었다. 항구에 버려지는 해도들에 착안해, 은퇴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덴마크에서 연금생활자가 된다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로부터 벗어나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즈가 지하실에서 만든 공책과 수첩들을 보여주고 있다. 항구에서 버려진 해도를 재활용해 만들었다. 리즈는 산업안전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자연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쏟게 됐고, 젊었을 적부터 취미삼아 옷이나 뜨개질 제품을 자주 만들어봐서 무언가 만드는 일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리즈가 지하실에서 만든 공책과 수첩들을 보여주고 있다. 항구에서 버려진 해도를 재활용해 만들었다. 리즈는 산업안전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자연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쏟게 됐고, 젊었을 적부터 취미삼아 옷이나 뜨개질 제품을 자주 만들어봐서 무언가 만드는 일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1인 기업을 하려면 돈과 시간뿐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술, 취미, 관심사, 인간관계도 필요하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젊은 시절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나이 들면 편히 먹고살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어쩌면 뒤집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리즈의 행복은 젊은 시절부터 쌓아올린 것이지, 65세가 넘어 연금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리즈와 함께 예니의 집으로 옮겼다. 집 구조는 비슷했다. 마당에 닭과 개를 키우고 있었다. 딸이 쓰던 방에는 자그마한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예니는 매주 목요일마다 7살, 4살 손자를 만난다. 예니가 집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걸리는 딸의 집으로 방문하기도 하고, 손자들이 놀러오기도 한다. 한달에 한 번 손주를 만나는 리즈보다는 가족 모임이 잦은 편이다. 예니의 집 구석구석에도 손자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리즈의 남편 요안. 전직 목공교사로 지하실에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취미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리즈의 남편 요안. 전직 목공교사로 지하실에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취미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예니가 내온 초콜릿과 커피를 앞에 두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리즈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노년에 접어든 두 사람에게 행복의 기본조건은 가족이었다. “별장에 가면 나는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별장에 틀어 박혀서 혼자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함께 오래 살았다는 것 자체가 좋지요. 서로 다른 점들을 인정하고 맞춰나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리즈에게 은퇴 후 가장 큰 걱정은 오래 함께해온 동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었다.

리즈는 “자원봉사 모임에 나가면 내가 지역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다. 끊임없이 나를 움직이고 사용할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예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예니 역시 봉사활동에 열심이지만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니는 화요일에는 집에서 쉬고, 수요일에는 가벼운 산책과 요가 모임에 나간다. 혼자 있을 때에는 과연 인생을 잘살아 왔는지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만족스러워진다고 했다. 예니와 리즈는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성격이 정반대였지만 40년 동안 쌓아올린 우정만큼은 흔들림이 없어보였다.

40년 지기인 예니와 리즈가 예니의 집 거실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40년 지기인 예니와 리즈가 예니의 집 거실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밖에서 본 예니의 집. 20세기 초 전통적인 북유럽 교외 주택 양식이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밖에서 본 예니의 집. 20세기 초 전통적인 북유럽 교외 주택 양식이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행복의 기준은 ‘나’

주말 코펜하겐 식당가에서는 3대가 모여 식사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테이블에 손바닥만 한 국기가 올려져 있으면 그집 아이의 생일이라는 뜻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생일 케이크에도, 여행에서 돌아온 가족을 맞는 공항에도 국기가 빠지지 않는다. 공적인 자리가 아닌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국기가 늘 등장하는 것이 신기하다. 덴마크인들의 유별난 국기 사랑은 유럽국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예니는 “나는 덴마크인이라서 행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덴마크에는 자연재해가 없다. 안전하다. 풍족한 연금이 나온다. 예니가 말하는 ‘덴마크 국민이라서 행복한 이유’다. 하지만 덴마크라는 국가, 덴마크라는 행복한 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정부는 고령화에 대비해 연금지출을 줄이려고 2011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올렸다. 예니는 이 때문에 퇴직 시기를 늦춰야 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금 받는 나이를 70세로 올릴 계획이다.

젊은 엄마들의 지역 육아모임도 예니가 다니는 교회 소유의 건물을 빌려서 진행된다. 예니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교회 감사업무에 참여하고,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육아모임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젊은 엄마들의 지역 육아모임도 예니가 다니는 교회 소유의 건물을 빌려서 진행된다. 예니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교회 감사업무에 참여하고,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육아모임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예니는 지역 교회에서 감사업무를 맡고 있다. 금요일 오후에는 교회의 회의에 참석해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이 잘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한 마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이웃들과 우정을 쌓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뿐 아니라 이런 자부심을 뒷세대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삶이 각박해지면서 덴마크의 따뜻한 정서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자식들은 연금을 받기 위해 더 오래 일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타적인 분위기도 바뀌어가고 있다. 이웃을 돕는 것은 덴마크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다. 그런데 최근 난민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덴마크의 전통이 위협받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1월 15일 코펜하겐중앙역에서 만난 게오르그 토르크. “행복하기 위해선 직업이나 국적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란드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1월 15일 코펜하겐중앙역에서 만난 게오르그 토르크. “행복하기 위해선 직업이나 국적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란드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만난 게오르그 토르크(68)는 한 마을에서 평생을 보낸 예니와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치과의사였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영국, 스웨덴 등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다. 이날도 그린란드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행복의 조건으로 ‘나’와 ‘친구’를 꼽았다. “내가 나인 채로 행복하지 않고 덴마크인, 혹은 스웨덴인, 미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면 그건 진짜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어떤 직업이라 해서 자랑스럽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자랑스러운 것은 오직 ‘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근래에 가장 유쾌했던 경험으로, 이웃에 사는 유학생들이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자기 집 앞마당을 빌려준 일을 꼽았다. 그에게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누군가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젊은 시절과 지금의 젊은이들을 비교해 탓하는 일도 없다고 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 그에게, 이웃의 유학생들은 평등한 친구들일 뿐이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뿐 아니라, 노인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이든 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마을을 넘어 역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게오르그의 자유로운 사고방식도, 리즈의 재능도, 요안의 유쾌함도, 예니의 마을 사랑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지금 누리는 행복은 당장 시행되고 있는 제도의 덕분이 아니라 그 사회가 수십년 동안 쌓아올린 결과물이었다. 행복하게 나이 들려면 ‘지금, 최선을 다해’ 행복해져야 한다.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문제에 눈을 돌릴 틈 없이 일하면서 뿌리 뽑힌 채로 늙어버린 한국 노인세대의 행복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물질적인 것만이 행복의 척도인 것처럼 채찍질을 당하고 스스로를 닦달해오다 어느 날 나이든 나를 발견했을 때,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 묵직한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니는 “행복이란 표현은 거창하지만, 살아온 삶에 만족하면 되는 것 같다”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예니는 “행복이란 표현은 거창하지만, 살아온 삶에 만족하면 되는 것 같다”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호이스헐름|박은하 기자

특별취재팀
구정은 김세훈 장은교 김보미 박은하 정희완 김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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