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 역풍 거센 영국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탈퇴 후회 ‘리그렉시트’ 봇물

2016.06.26 23:02 입력 2016.06.26 23:42 수정
런던 | 이인숙 기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25일(현지시간) 런던 도심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 | AFP연합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25일(현지시간) 런던 도심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 | AFP연합

브렉시트로 결론이 난 국민투표 이후 처음 맞는 일요일인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도심 웨스트민스터 의회 광장과 트라팔가 광장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전날 이곳에서는 수천명이 모여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했다. 의회 광장 한쪽의 조 콕스 하원의원 추모소도 잊힌 듯했다. 주말 새 폭우를 맞아 꽃다발은 시들었고 촛불은 꺼졌다. 의회 옆 작은 공원에는 BBC, 스카이뉴스 등 영국 언론과 해외 방송들이 생중계 부스를 차려놓고 분주히 움직였다.

[브렉시트 - 역풍 거센 영국]“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탈퇴 후회 ‘리그렉시트’ 봇물

트라팔가 광장에서 만난 닐 위먼(58)은 휴일을 맞아 딸과 함께 국립미술관에 나온 길이었다. 위먼은 브렉시트는 “실수”라고 잘라 말했다. 잔류에 표를 던졌다는 그는 “그날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탄식했다.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했다. 그의 딸은 2차 국민투표라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위먼은 “우리는 이미 선택했다. 나중에 다시 EU에 가입하면 몰라도 재투표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는 다음주 더욱 거세질 것 같다. 페이스북에 “28일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EU 잔류를 촉구하는 ‘런던 스테이’를 하자”는 제안이 올라오자 3만5000여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온라인은 들끓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후회(Regret)와 브렉시트(Brexit)를 결합한 ‘리그렉시트(#Regrexit)’와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인가(What we have done)’ 같은 해시태그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하원 웹사이트 청원 게시판에는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청원이 올라왔고 26일 낮 현재 310만명이 참여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이 ‘런던 독립’을 선언하고 EU에 가입해야 한다는 청원운동에도 15만여명이 서명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작가 조앤 K 롤링은 트위터에 “지금처럼 (투표 결과를 되돌릴) 마법을 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영국 가수 마리안 페이스풀은 “인종차별적이었던 ‘리틀 잉글랜드’로 돌아갔다”고 했다. 샤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도시 유권자들은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았다”며 지방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국민투표의 법적 구속력은 없기 때문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결과를 무시하고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의회 표결에 부칠 수는 있다. 하지만 투표율 72.2%나 되는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재투표 청원도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원은 10만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에 대해서는 의회에 회부할지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결론난 안건을 다시 투표에 부칠 명분은 없다.

특히 브렉시트는 영국 내 세대, 지역, 인종 갈등을 부각시켰다. 1973년 영국의 EU 가입 이후 태어난 세대는 대부분 잔류를 원한 반면 이전 세대들 다수는 탈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댄 보덴은 트위터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외국인을 증오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정말 처참하다”는 글을 올렸다.

정치권은 내분에 휩싸였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하원의원 2명은 제러미 코빈 대표에게 브렉시트 결정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불신임안을 제기했다. 마거릿 호지 의원은 “코빈 대표가 성의 없이 캠페인을 해 지지층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BBC는 코빈이 꾸린 예비내각의 절반 이상이 사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집권 보수당도 갈라졌다. 탈퇴파를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유력 차기 총리로 떠올랐지만, 당을 통합하기 위해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이 총리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국민투표 도박을 벌인 점, 그러나 투표 연령을 16~17세로 낮추지 않은 점, 존슨을 잔류파에 끌어들이지 못한 점, 총리 본인이 TV토론에 나서지 않은 점 등을 ‘캐머런의 11가지 실수’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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