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대일외교, 반일·극일보다 용일의 시대로 가야”

2021.12.19 08:27 입력 2021.12.19 08:29 수정
*경향신문은 한국의 외교안보, 경제, 군사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분석’, ‘다음 정부를 위한 정책 제안’ 등을 담은 연속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플라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인터뷰는 ‘외교안보에는 좌우가 없다’는 원칙하에 다양한 진단과 대안을 가감없이 실을 예정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겠습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12월 14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12월 14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외 환경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은 것은 한일관계다.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갈등은 경제·안보문제로까지 확산됐고,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갈등의 책임을 떠넘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는 데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이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로 대표되는 동맹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악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의 외교 원칙이 가장 변하지 않은 것도 대일관계다. 정권의 성격, 지향점과 관계없이 일본은 ‘극복’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극일’이 대일외교의 중심이다 보니 일본을 이용한다는 ‘용일’의 관점은 모색도 시도도 되지 않았다. 외교적 효용성을 찾지 못한 대일관계는 ‘반일’ 여론을 자극해 이득을 얻는 국내정치에서만 빛을 발했다. 그러는 사이 실제 피해자들은 한명씩 세상을 떠났다.

갈등의 근원으로 지목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물러났다. 새로 일본의 키를 잡은 것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다. 그는 안보는 미국에, 일본은 경제에 집중한다는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소국주의’를 계승한 이른바 ‘보수본류’로 평가된다. 개헌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아베 전 총리의 ‘대국주의’와는 색깔이 다르다. 이는 내년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관계개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용일’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강제동원 배상 문제로 시작된 국내 일본 기업 자산의 강제매각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는 새 정부 외교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플라자 프로젝트’ 8회는 조양현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책임교수와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14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진행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관계 평가는.

조양현(이하 ‘조’) “이슈는 총 세가지였다. 먼저 과거사 문제다. 지지자 입장에서 보면, 현 정부의 대응은 역사 정체성을 바로 세운 것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위안부 합의를 검증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 측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 판결을 존중했다. 그런데 반대 입장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든 풀려나갔던 양국 관계가 다시 경색됐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사실상 공공영역, 민간영역이 모두 막혀버렸다. 이는 다음 정부가 악화된 한일관계를 넘겨받게 됐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수출 문제다. 일본은 우리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분야를 공격했다. 과거 우리 경제력이 약했을 때는 일본이 압박하면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와서는 일본의 보복에 맞섰다. 그 결과 우리가 받은 영향력은 미미했던 반면, 오히려 일본이 경제·외교적 손실을 입었다. 이는 정부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을 외교의 우선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북미를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평가받을 수 있다. 다만 북한 비핵화가 실질적 성과가 있었나 하는 부분에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한·미·일 공조를 통해 실질적 성과로 연결해야 했는데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지 않았다.”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과열된 반일·친일 프레임 대결이 지적에 동의하게 만든다. 일본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주장은 건설적인 논의라도 비판받았다.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검증하고, 이를 통해 도출된 조치들을 중단시켰다. 그런데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합의 파기를 통보하거나 재교섭은 하지 않았다. 완전한 인정도 아니고, 파기도 아닌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애매한 행보가 문제해결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어렵게 했고, 결과적으로 외교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역대 정부도 비슷하지 않았나.

조 “이를 일본 특수성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친미, 반미, 친중, 반중 다 말할 수 있지만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반일만 가능하다. 친일은 곧 매국이 된다. 이러한 특수성은 쉽게 말해,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직접 전해 들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친족이 당한 일은 역사에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런데 사실 역사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질 당시에는 경제적 발전을 도와줄 나라가 일본 정도밖에 없었다. 북한과 체제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남한을 지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살아남기가 급하다 보니 과거사 문제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면 북한과의 체제경쟁 문제가 정리되고 서서히 역사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이후로는 사실상 해결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외교적 합의는 51 대 49의 미학이다. 그런데 역사문제가 부각되면 100 대 0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실질적 해결없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상황만 반복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일관계가 좋았던 적이 드물다.

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는 한일관계가 아무리 경색돼도 정부가 바뀌면 화해하는 패턴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패턴이 사라졌다. 변곡점이 된 것은 2011년 8월이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문제해결에 진전이 없는 상황을 두고 정부의 부작위적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집중 제기하고 이듬해에는 독도를 방문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해도 관계개선 없이 갈등은 지속됐다. 한국 정부가 보수냐, 진보냐와 관계없이 일본과 과거사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사법부 판결은 정부의 과거사 대응을 일본으로부터 불법행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받는 것이라는 하나의 선택지만을 남겼다. 외교적 해결은 어렵고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쉬운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지난 10월 28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10.30 강제 동원 대법원판결 3년, 강제 동원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모습(왼쪽)/우철훈 선임기자.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공공전시장인 ‘시민 갤러리 사카에’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연합뉴스

지난 10월 28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10.30 강제 동원 대법원판결 3년, 강제 동원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모습(왼쪽)/우철훈 선임기자.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공공전시장인 ‘시민 갤러리 사카에’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연합뉴스

-사법부 판결에 지나치게 구속되는 것 아닌가.

조 “1950~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군기지 문제와 관련된 재판이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군기지 앞에서 반미데모를 하다가 검찰에 기소되는 상황이다. 일본은 이 문제를 겪으며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결로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을 불문율로 만들었다. 이른바 ‘사법자제의 원칙’이다. 반면 한국은 사법부 판결을 삼권분립 원칙하에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일본 입장에서는 민감한 이슈를 어떻게 사법부 판결에만 맡겨두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강제동원 문제는 역대 한국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 구제에 대응해 왔으면서 이제 와서 정부가 빠져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사법부 판결마저 일관성이 없다. 위안부 관련 판결에서 일본 정부의 주권면제를 인정했다가 안 했다가 하는 식이다. 어느 쪽 판결을 원칙으로 대응을 할지 우리 정부부터 헷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법부가 큰 방향을 결정하면 우리 정부는 얼마남지 않은 정치적 재량권을 활용해 일본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판결에 일관성이 없어 어려운 상황이다.”

-수출규제 사태 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보다 우위에 섰다는 ‘한일역전’ 논리에 기반을 둔 주장이다. 일부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을 역전한 것은 사실이다.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이 일본 기업들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이는 첫째로 과거사 갈등이 지나치게 소모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이 서로 국익을 걸고 마이너스섬 게임을 하고 있다. 실제로 주요 7개국(G7) 모임을 한국을 포함시켜 확대하자는 주장에 일본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이 중국과 밀접해 기존 국가들과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도 섣불리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문제다. 반대로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행보를 견제하는 대결 구도로 가고 있다. 둘째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일본이 필요하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실패한 원인으로 일본의 존재를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본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됐다. 한·미·일 3국의 대북공조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일본 역시 3분의 1의 발언권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미중 전략 경쟁 상황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지만 경제는 중국이 가장 큰 상대국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만의 딜레마가 아니다. 일본도 상황이 똑같다. 미중 대결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한일 양국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 사실 동북아에서 미중 관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한국과 일본 정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일 양국 관계는 동북아지역의 공공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종전선언에도 일본이 변수가 될 수 있나.

조 “트럼프 정부 때의 대북접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한국이 일본을 배제한 채 북미 간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일본은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주장한다. 비핵화의 실질적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국제제재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바이든 정부는 일본 입장도 고려한다는 기조로 선회했다. 한·미·일 삼각공조 체제하에서 북한문제를 보는 것이다. 이제는 일본도 한반도 문제해결에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종전선언 추진은 남북한과 미국, 여기에 중국 정도가 들어가서 논의되는 구조다. 6자회담 당사자인 러시아와 일본은 빠져 있다. 문제는 종전선언 이후의 국제정치질서에서도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냐다.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은 한반도, 일본에 주둔한 미군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은 일본이 민감하게 여기는 미군 감축 문제와 엮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개입 동기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중 대결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면 빠른 선택이 낫다는 지적도 있는데.

조 “미국은 중국에 대해 무조건 ‘강 대 강’ 대치만 하지 않는다. 이를 ‘2중의 이중성’ 전략이라고 한다. 즉 안보문제와 경제문제를 나눠 접근한다는 것이다. 희토류, 반도체 등의 전략적 물자에 대해서는 경제안보라는 측면에서 강하게 대응한다. 하지만 일반 무역관계에 대해서는 중국과 소통하는 식이다. 또 하나는 다자관계와 양자관계를 분리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을 모아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직접적 충돌은 줄이려고 한다. 즉 다자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양자적으로는 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2중의 이중성은 미국의 국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전략에 입각해 있다. 한국, 일본도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과 유사한 전략을 펼쳐야 하는데 양국이 갈등하다 보니 위기에 대응하는 공동의 대안을 쓸 수가 없다.”

-일본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우경화가 가속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조 “제2차 아베 내각이 7년 8개월 정도 이어졌다. 포스트 아베의 일본이 어떤 국가전략을 추구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무엇이 계승됐고, 무엇이 변했는지를 알 수 없는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과거사 문제해결의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기시다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자민당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에서 많이 양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AP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AP연합뉴스

-기시다 총리도 개헌, 적 기지 공격 능력의 보유를 말하지 않나.

조 “일본이 보통국가화하거나 방위력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대표적으로 개헌 문제는 아베 전 총리가 7~8년 동안 지속적으로 한다고 해놓고도 못했다. 본인은 못 했으면서 비둘기파인 기시다 총리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의 개헌 논의에 적극적 동의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속내는 평화헌법을 계속 가져간다는 노선에 가깝다.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도 아베 전 총리가 물려준 사안인데 스가 전 총리도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안 했다. 국내정치적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기지 공격은 곧 미사일 능력을 강화한다는 것인데 이를 미국이 용인할 것인지도 문제다. 이는 일본은 방어하고 미국이 공격한다는 미일안보조약의 기본전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일본이 더욱 보수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정부에서 한일관계 개선이 어렵다면 다음 정부에서는 가능할까.

조 “새로운 정부를 누가 꾸린다고 해도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표적으로 국내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문제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대응을 하면 피해갈 수 있겠지만 현재처럼 관여하지 않는다는 현금화 조치는 실현될 것이다. 그러면 일본 정부로서도 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현재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이러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장 대일 강경책을 쓰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경기조를 보이자 미국이 나섰던 사례가 있다. 이 후보가 당선되고 한일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 미국은 다시 중재자로 나서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국내 반일 여론을 감안해 일본과 쉽게 타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한일관계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이 아니라면, 집권 이후 당장 발생할 국내 일본 기업의 현금화 문제를 어떻게 대비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12월 14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12월 14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다음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조 “현재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 북한문제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세가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는 피해자 구제부터 먼저 했으면 한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여러 단체가 있지만 실질적 대안을 내놓는 곳이 없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들이 세상을 뜨고 있다. 이후에 100점짜리 합의안이 나온다고 해도,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뜬 후라면 의미가 반감된다. 우리 정부 예산을 들여서라도 선제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대위변제’, 즉 정부 예산으로 먼저 피해자를 구제하고 나중에 일본 정부에 보상을 받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과거사 대응에서 민간이 나설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일외교는 과거사 문제가 전부가 아닌데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중심이 되다 보니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민간과 정부가 역할을 분담하고, 과거사 문제는 민간 논의를 중심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일관계도 양자관계가 아닌 다자관계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다자적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상대화하면 북한문제도 지역이슈가 된다. 일본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 협정서’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교환하고 악수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 협정서’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교환하고 악수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 국력이 ‘G10’으로 불릴 정도로 상승한 만큼 대일 외교도 이제는 반일이나 극일보다는 용일의 시대로 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본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과의 개인적 악연을 덮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냈다.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비판받더라도 국익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을 국제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관계개선에 대한 두려움 없는 결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