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긴 전쟁’ 종식…불안한 첫발

2020.03.01 22:09 입력 2020.03.01 22:13 수정

미·아프간 탈레반 평화합의

탈레반, 대미 공격 중단…미국은 14개월 내 완전 철수 합의

아프간 정정 불안…“역사적 합의” 평가 불구 재발 불씨 여전

WP “미국 출구전략만 있을 뿐 아프간을 위한 해결책 없어”

<b>희망의 약속 될까</b>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왼쪽)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측 대표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합의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도하 | 로이터연합뉴스

희망의 약속 될까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왼쪽)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측 대표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합의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도하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18년여에 걸친 무력충돌을 끝내자는 평화합의에 서명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10월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벌여왔다. 합의가 성사됨에 따라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 함께 국가재건과 평화정착을 위한 협상을 벌이게 된다. “역사적 합의”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의 정정 불안 등 상황을 감안할 때 “미국의 성급한 발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잘마이 칼릴자드 미 아프간 특사와 탈레반 창립자 중 한 명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평화합의에 서명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미군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군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미국은 아프간 주둔 미군 및 동맹군을 14개월 안에 전원 철수하기로 했다. 미군은 우선 현재 1만2000명 규모의 병력을 135일 안에 8600명으로 줄인다.

탈레반은 알카에다 등이 아프간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미국은 탈레반 지도부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양측은 신뢰를 확인하는 절차로 내달 10일까지 국제동맹군과 아프간 정부군에 수감된 탈레반 대원 5000명과 탈레반에 포로로 잡힌 아프간군 1000명을 교환하기로 했다. 양측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평화합의의 효력과 이행을 보증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고, 유엔은 평화적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평화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대표는 오는 10일쯤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직접 협상에 나설 예정이라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아프간 철군’을 공약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전쟁은 길고 섬뜩한 것이었다”며 평화합의가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탈레반 지도자들과 미래에 직접 만날 것”이라며 탈레반을 ‘동맹’으로 표현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도 로이터통신에 “국가의 행복을 위해 어떤 공격도 하지 말라고 모든 전사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아프간 전쟁에 들어간 미국의 비용은 약 2조달러(약 2420조원)이고 미군 2400명 등 연합군 희생자는 3500명이 넘는다. 아프간 보안군 및 민간인 희생자도 각각 6만명, 4만명에 달한다. 탈레반 약 7만명, 알카에다 약 2000명도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로버트 말리 국제위기그룹 대표는 “약 20년간 수많은 미국인과 아프간인들의 삶을 앗아간 전쟁을 끝내기 위한 가장 희망적인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2018년 양측은 지난해 9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평화합의에 서명하기로 했지만 탈레반이 연쇄 공격을 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일정을 전격 취소한 바 있다. 이번에도 평화합의 서명은 했지만, ‘조건부’라는 점에서 합의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아프간 내 이슬람국가(IS)의 영향력 확대, 아프간 재건 비용 부담 등 쟁점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외교성과를 의식해 “성급하게 발을 뺀다”는 비판이 나온다.

합의 과정에서 배제된 아프간 정부도 제동을 걸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1일 미국과 탈레반 ‘포로 교환’ 합의를 두고 “아프간 정부는 5000명의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관한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 포로 교환은 미국 권한이 아니다”라고 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 아프간 정부는 친미·세속주의를 추구하는 등 지향점이 완전히 다른 만큼 양측의 평화정착 협상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게다가 가니 대통령은 최근 재선 과정에서 부정 시비에 휘말리는 등 지지기반이 약하다. 탈레반이 가니 정부 정통성을 빌미 삼아 정권 장악에 나설 수도 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 여성인권 탄압 등으로 이어져 미국이 ‘전쟁하는 이유’ 중 하나였던 ‘아프간 민주주의’는 뒷걸음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출구전략만 있을 뿐 아프간인을 위한 해결책은 없다”고 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