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향한 독일·프랑스의 잇딴 사과, 그러나 청구권은 없다?

2021.06.06 18:17 입력 2021.06.07 22:37 수정

프랑스와 독일이 지난달 각각 아프리카 르완다와 나미비아에서 발생한 과거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유럽의 강국들이 과거를 마주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 내딛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형식적인 책임 인정에 그쳐 “서구 제국주의의 잔혹성을 직시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미비아의 일부 부족에 대한 독일의 학살이 이뤄지던 1904~1908년 동안, 독일군에 배속됐던 나미비아 죄수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나미비아의 일부 부족에 대한 독일의 학살이 이뤄지던 1904~1908년 동안, 독일군에 배속됐던 나미비아 죄수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20세기 첫 대량학살, 독일의 사과

독일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100여년 전 나미비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1904년부터 1908년까지 독일은 나미비아에서 식민통치에 반기를 든 오바헤레로족과 나마족 수만명을 학살했다. 독일은 1990년 나미비아 독립 후 상당한 개발원조를 해왔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다가, 2015년에 들어서야 양국 정부간 논의를 시작했다. 나치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독일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때문에 나미비아 학살은 ‘잊혀진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이라 불렸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사과 성명에서 “독일의 역사적·도의적 책임을 고려해 나미비아와 희생자들의 후손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나미비아에 30년간 11억유로(약 1조5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중 10억5000만 유로는 나미비아의 농업개혁, 직업교육 등 개발 지원 기금으로 조성되고, 나머지 5000만 유로는 화해재단 설립에 사용된다. 나미비아 하게 게인고브 대통령의 대변인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걸음”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BBC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작성된 성명”이라며 “협상이 학살 인정으로 귀결됐지만, 선언문은 공허하다”고 꼬집었다. 먼저 독일은 나미비아에 대한 금전 지원을 배상이 아니라 지원금으로 규정했다. 독일은 이번 성명에서 “배상”이나 “법적 책임”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동시에 “이 개발지원금을 이유로 법적 보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학살 피해자인 오바헤레로족이 독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고 시도하는 와중에 국가를 상대로한 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만행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피해자나 후손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도 지지 않게끔 했다”고 보도했다.

나미비아의 시민들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수도 윈드호크에서 100년 전 학살에 대한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의 합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미비아의 시민들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수도 윈드호크에서 100년 전 학살에 대한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의 합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피해 당사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일방적인 성명 발표였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독일의 성명이 발표되던 시점에 오바헤레로족 등은 학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두고 여전히 부족간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피해 부족들은 “모욕적인 액수”라며 지원금이 나미비아 집권당인 서남아프리카인민기구(SWAPO)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미비아는 1990년 독립 이후 오밤보족이 이끄는 SWAPO가 줄곧 집권했고, 여타 부족들은 소외됐다. 학살 과정에서 독일은 우물에 독을 풀고, 일부 유골은 실험을 위해 자국으로 반출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서는 독일 박물관과 도서관 등이 보관중인 유골 수만점과 예술품 반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킴 바그너 런던 퀸메리대학 제국사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독일의 성명이 5년간의 협상의 최종 결과라는 사실은 사과가 결코 자발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일단 사과하고 배상금이 지불되고 나면 역사적 부채는 해결된 것으로 간주된다. 윤리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더 이상 요구할 수 없다”며 “이것은 죄인이 스스로의 속죄의 조건을 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르완다 키갈리의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훑어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르완다 키갈리의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훑어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80만명 학살, 프랑스의 사과

독일의 사과가 있기 몇 시간 전인 지난달 27일,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르완다를 방문해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에 대한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르완다에서 지역 갈등이나 내전을 피하려고 노력하면서 제노사이드를 저지르는 정권과 사실상 나란히 서 있었다”며 “진실을 규명하는 대신 침묵을 지키며 르완다 국민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하고 역사를 직시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1994년 르완다의 후투족은 약 100일 남짓한 시간동안 소수민족인 투치족 80만명을 학살했다. 프랑스는 제노사이드의 전조를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당시 르완다를 통치하던 후투족 정부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 4월 르완다는 ‘예견된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6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고 이 같은 의혹이 사실임을 재차 확인했다. 프랑스가 자국의 르완다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예상 가능한 인권유린을 눈감은 것이다. 르완다 정부는 더 나아가 프랑스가 제노사이드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최근 보고서에서도 이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보고서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가 르완다 대학살에 자국이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와 증언을 은폐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책임 인정에 “엄청난 용기를 가진 행동”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도 “사과보다 더 가치 있었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책임 인정이 공식 사과는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프랑스의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에둘러 언급했다.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책임 인정이 과거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런던대 아프리카·아시아연구원인 마이클 제닝스는 폴리티코에 “르완다 대량 학살 사건에서 프랑스의 책임에 대한 마크롱의 성명은 아프리카 정책 전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와 르완다 사이의 관계 복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식민통치 경험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르완다는 프랑스가 제노사이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자, 2006~2009년 사이 프랑스와 단교한 바 있다. 이어 르완다는 역사적 유대관계가 없는 영연방에 가입했다.

때문에 프랑스는 르완다에서의 영향력 쇠퇴를 우려해 왔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행보 역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에티오피아에 아프리카연합의 새 본부 건설을 지원하는 등 각국에 차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역시 서구보다 저렴하게 비행기, 무기 등을 판매하며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과거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식민통치했던 유럽 국가들은 과거사 갈등 등에 발목잡혀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를 하나 둘 잃고 있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의 르완다 방문을 수행한 에르베 베르빌 의원 역시 “역사를 도구화하고 착취하려는 중국, 러시아 등 경쟁자들의 시도를 좌절시키는 것도 과거사 반성의 목적”이라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5년부터 공석인 르완다 주재 프랑스 대사를 조만간 임명하고, 코로나19 백신 10만회분도 지원키로 했다.

100여년 전 독일군에 학살당한 나미비아인들의 유골. AP연합뉴스

100여년 전 독일군에 학살당한 나미비아인들의 유골. AP연합뉴스

■“반성보다는 잿밥에?”

독일의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 역시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 확대라는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폴리티코는 “독일이 말리에 있는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원조금을 늘리고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기로 한 데 이어 스스로 (나미비아에서의) 책임 인정함으로써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대선 때도 ‘과거사 반성’이 주요 대선 의제가 됐다. 2017년 대선에서 마크롱과 맞붙었던 극우정치인 마리 르펜은 “신념이 있는 알제리인들도 (프랑스 식민화의 성과를) 인정한다”며 식민통치를 미화했다. 프랑스에 100년 넘게 식민지배를 당한 알제리는 독립전쟁 과정에서 150만명이 사망했다. 마크롱은 대선후보 시절 알제리 식민지배에 대해 “정말로 야만적이었으며 사죄해야 한다”고 언급해, 중도층을 끌어들였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이 르완다에서의 자국 책임을 인정하면서, 과거사 반성 문제는 다시 주요 대선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킴 바그너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의 성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좋을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진정한 역사에 대한 인식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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