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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과 지원’이 만든 결실…“이주민에서 ‘세계 시민’ 됐다”

2024.06.05 10:02 입력 2024.06.05 10:08 수정
오스텔스하임(독일) | 김희진·이창준 기자

다양성을 끌어안는 민주주의를 말하다

난민 출신 독일 오스텔스하임 시장 리얀 알셰블 인터뷰

리얀 알셰블 독일 오스텔스하임 시장(30)이 지난 4월30일 오스텔스하임 시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오스텔스하임|김희진 기자

리얀 알셰블 독일 오스텔스하임 시장(30)이 지난 4월30일 오스텔스하임 시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오스텔스하임|김희진 기자

시리아 내전 피해 2015년 독일 이주…정착 8년 만에 인구 2500명 대부분 백인인 보수적 시골 마을서 시장으로 당선
독일, 난민에 취업 기회·장기 체류 등 실질적 뒷받침…“사회 일원 되려는 사람에게 열린 문, 자연스럽게 시리아인이자 ‘독일인’ 정체성 가져”
독일서 난민 문제는 ‘해야 한다’ 넘어 ‘어떻게’로 이동…“고령화 겪는 한국, 국가 존속 위해 현명한 이민 정책 설계 필요할 것”

리얀 알셰블(30)은 독일 남서부 작은 마을 오스텔스하임의 시장이다. 2023년 4월 시장에 선출돼 1년 넘게 시정을 책임지고 있다. 알셰블 시장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는 시리아였다. 내전을 피해 2015년 독일로 이주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 독일이 받아들인 난민 100만여명 중 한 명이다. 이방인으로 독일에 온 지 8년 만에 시장이 됐다.

오스텔스하임은 인구 2500명 대부분이 백인인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시골 마을이다. 알셰블 시장의 당선은 ‘동화 같은 일’ ‘포용을 보여준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민자 출신은 독일 전체 인구의 약 24%를 차지한다. 반면 시장이 이민자 출신인 사례는 1%대에 그친다. 독일은 메르켈 총리 시절 대대적 난민 포용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후 반이민을 핵심 기치로 내건 극우 세력이 부상해 현재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장 임기 8년 중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알셰블 시장은 오스텔스하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시청 사무실 열쇠를 관리하는 일부터 각종 회의, 현장 감사 등을 도맡았다. 마을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풍력발전기 사업은 직접 추진 중이다. 정책 의사결정을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4월30일 독일 오스텔스하임을 방문해 알셰블 시장을 직접 만났다.

알셰블 시장은 스스로를 ‘세계 시민’이라고 정의했다. 배경과 소속감 등이 다양한 난민 출신으로서 다른 국가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정착했다. 개별 국가의 구성원에서 더 나아가 지구촌 전체 체계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발돋움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례를 두고 “독일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라고 알셰블 시장은 강조했다. 독일은 이민자를 포용하려고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사회인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셰블 시장은 “내가 겪은 일(난민 출신이 시장으로 당선되는 일)이 일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리얀 알셰블 시장과의 일문일답.

- 2015년 난민으로 독일에 온 지 8년 만에 오스텔스하임 시장이 됐다.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가장 큰 도움은.

“2015년 친구들과 독일에 올 당시에는 메르켈 총리 시절 독일 정부가 주도한 이민자 수용 정책인 ‘환영문화(Willkommenskultur)’가 있었다. ‘환영문화’가 강조된 2015~2016년 독일에 온 난민은 1960~1970년대 이주해온 이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독일은 난민 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난민이 한 시민으로 인정받도록 지원한다. 독일 사회는 이민자를 물리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가 사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려는 의지가 있다. 또 정부는 막 도착한 이민자들이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독일은 사회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열어둔다. 나의 경우 좀 더 작고 보수적인 지역에 정착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도 했다. 시골 지역은 보수적인 환경이긴 하지만 (나를) 적대시하진 않았다.”

- 이제는 완벽히 독일 사회 일원이 됐다고 느끼나.

“사회 일부가 되는 것은 보수적인 문화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거나 ‘순수한 독일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인식하고 독일 사회 일부로서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배경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독일인인지 시리아인인지 흑백처럼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 독일 시스템 또는 시민이 민주적이라고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내가 이룬 성취(오스텔스하임 시장 당선) 자체가 독일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다. 물론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 조건들이 있지만, 8년 전 시리아에서 와서 독일어를 전혀 몰랐던 사람도 충분히 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시장으로 선택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리아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지만 난민으로 독일에 왔다. 초반 2~3년은 시리아에서 도망쳐 독일에서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인 동시에 독일에 사는 시리아인이었다. 독일에 온 지 9년이 된 지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훨씬 복잡해졌다. (시장으로서) 시민을 대표하는 책임을 지는 동시에 여전히 시리아 난민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어서다. 개인적으로 찾은 정체성에 대한 답은 ‘세계 시민’이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소속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나는 단순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더 높은 수준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오스텔스하임은 보수적으로 투표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은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는 다르다. 오스텔스하임에는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소수다. 보수적인 이들을 설득하는 법은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사회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언어와 환경을 익혀 한 사회에 적응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하며 책임질 의향이 있음을 내보이는 것을 뜻한다.”

- ‘난민 출신’이란 배경이 시장 업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여전히 시리아 출신이고 난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만의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장점은 차별이나 시민 참여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민감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난민 신청이 늘면서 독일 극우파 정당 등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난민을 수용하면 단점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데.

“난민 문제를 단순히 장단점으로 논하긴 어렵다고 본다. 장단점은 경제적으로 세밀하게 조사해야 하지만 장점이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독일은 인구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고령화로 인해 후대에 충분한 인구가 확보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다만 난민 중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모든 난민이 전문 기술이 있거나 즉시 일자리에 배치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 독일 사회는 난민 포용 정책을 잘 갖췄다고 보나.

“8~9년 전에는 이민자 수용 문제가 강조됐다. 당시 독일 전역에서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포기하고 이민자들을 돕겠다”며 자원봉사에 나섰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통합 담당’이라는 상설 조직을 만들어 이민자를 돕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지금도 있지만 예전처럼 강력하진 않다. 최근 독일 사회는 상승과 하락 시기를 겪으며 분열되기도 했다. 중도우파에서 극우파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다만 자유주의자와 좌파는 “우리가 이민자 문제를 더 잘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 난민 포용 정책의 문제는 ‘해야 하는가’를 넘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은 정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라다.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인구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한국도 국가로서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어느 정도 이민에 의존해야 할 텐데, 이민 정책을 얼마나 현명하게 설계할지는 또 하나의 문제다. 장기적으로 국가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이민자를 돕고 관리할지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세계화로 인해 더 이상 폐쇄된 사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한국에서도 당신의 시장 당선 소식은 널리 소개가 됐었다. 경향신문이 포럼을 열 예정인데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나의 이야기를 환영하고 축하해준 것은 매우 영광이고 감동적이다. 다만 그런 상황이 내가 바라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다. 내가 겪은 일이 일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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