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장관이 ‘서민주거 해결사’가 되는 방법

2017.06.26 20:27 입력 2017.06.26 20:39 수정
박용채 논설위원

신문사 선배이자, 퇴직 뒤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택근 작가의 페북에 눈길이 멈췄다. 그의 고향인 정읍, 정확히는 신태인 얘기였다. 신태인은 100년 전쯤 태인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세워진 기차역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에 따르면 그곳 부모들은 못 입고 못 먹어도 자식은 피가 나게 가르쳤다. 운송수단으로서의 기차의 역할이 줄면서 고향은 쇠락해져 갔다. 그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동향의 김현미 국토부 장관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고향에 대한 애잔함, 고단하지만 자존감을 잃지 않은 부모 세대, 그 열망에 부응한 김 장관에 대한 뿌듯함이 녹아 있다.

[박용채 칼럼]김현미 장관이 ‘서민주거 해결사’가 되는 방법

김 장관의 발탁은 예상 밖이었다. 청와대는 그가 “서민과 신혼부부, 청년의 주거 문제를 해소하고 뉴딜사업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3선에 정무위, 기획재정위, 예결위 등에서 활동했지만 국토 관련 정책을 다룬 경험은 없다. 정치부 기자들은 그가 모르는 분야는 죽자고 파고드는 엄청난 노력파라고 말한다. 이런 그가 며칠 전 취임 일성으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집값 폭등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4구의 거래내용을 살펴봤더니 1년 전에 비해 5주택 이상 보유자와 29세 이하의 거래가 각각 53%, 54% 늘었다는 게 논거이다. 그는 앞서 서울 전 지역의 입주 전 분양권 전매금지 등을 골자로 한 6·19 대책을 내놨다. 언론들은 대책발표 뒤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지역의 분양에는 인파가 몰리지만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강남 일대 재건축의 상승세는 꺾였다고 전하고 있다.

사실 정부가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정치적 제스처이거나 물정을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이다. 6·19 대책이 나온 뒤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부자-뭘해도 영향 없음, 졸부-재건축 여러 개로 못 쪼개서 불만이지만 영향 미미, 개포동 주민-국토부 파이팅’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집값이 오르면 국토부는 금융당국에, 금융당국은 국토부에 책임을 미룬다는 조롱도 예사이다. 이런 비아냥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대정부의 투기근절책은 반짝효과에 그쳤고, 집값은 시간차를 두고 어김없이 올랐다. 이러니 투기세력들이 정부 발표에 겁먹을 까닭이 없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불패신화에 맞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분양가 상한제·종부세 등의 규제와 주택담보인정비율·총부채상환비율 정책까지 도입했지만 집값 상승세를 막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종부세를 세금폭탄으로 몰고 간 기득권의 저항, 취·등록세 감면과 양도세 중과 사이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온 투기꾼들의 움직임, 지방혁신도시에서 보상으로 풀린 돈의 서울 유입 등 가진 자들의 흐름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김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딛고 ‘투기 저격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주택보유세 인상과 함께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 청구권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투기 근절의 최종 목적지가 전·월셋값 상승으로 고통받는 서민 주거 안정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소비가 최악인 상황에서 시민들은 집과 땅 가진 건물주만 왜 불황 무풍지대인지 납득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실세로 떠오른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한국 사회의 가성비를 떨어뜨리는 핵심 요소로 교육비, 보육비와 함께 주거비를 들었다. 주거비를 조금만 낮춰도 가처분 소득에 여유가 생겨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주거복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당연히 이제는 집 많은 사람이 손해보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과격하다고? 그 정도 각오 없이는 집값은 잡히지도 않는다. 더 큰 과제는 경기 후퇴기 때의 대응이다. 경제를 하다보면 어려움은 닥치기 마련이다. 그 틈을 비집고 부동산경기가 꺼지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건설 의존형 성장 논리 혹은 부동산 낙수효과가 고개를 내민다. 시장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면서 투기를 잡겠다는 얘기가 거론된다. 양립 가능하다고? 천만에,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이 경우 경기가 우선이고, 투기근절은 뒷전이다. 세입자 보호 명분으로 집 가진 자들에 대한 규제책은 후퇴한다.

아직은 이런 고민할 때가 아니라고? 천만에, 미국의 금리인상이 속도를 내거나 가계부채 위기가 커지면 판단을 압박받게 된다. 이쯤되면 부동산정책은 이미 국토부 장관 손을 떠날 수도 있다. 되묻자. 언제까지 투기세력에 편승해 경기를 이끌 것인가. 한국 경제를 건설경기에 맡겨야 하나. 이런 측면에서 김 장관은 투기세력뿐 아니라 정부 경제팀, 관료들과도 맞짱을 떠야 할 순간을 맞게 될 수 있다. 설득하지 못하면 투기와의 전쟁은 물론이고 서민 주거안정도 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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