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들의 게임, 금수저들의 게임

2018.01.22 21:15 입력 2018.01.22 21:19 수정
박용채 논설위원

요즘 어때? 물어 뭣해. 반토막인데 죽을 맛이지. 신참들은 번갯불을 맞았을 테고, 조금 재미본 이들은 이것저것 끌어다 쏟아부으면서 된통 물렸을 게야. 물론 잠시 동안은 흥미로웠지. 자고 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올라 있었어. 코인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했지. 물질이 앞서면 정신이 무너진다고? 턱없는 소리. 취업난, 고용불안에 시달려 보라고. 퇴직 뒤 불안감은 또 어떻고. 뼈 빠지게 벌어도 턱없이 부족했잖아. 그러니 말려도 ‘가즈아~’였지. 사실 돈을 많이 넣지도 못했어. 업비트나 빗썸에 들어가 봐. 개중에는 수천만원씩 넣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반 가까이가 100만원 미만이야. 흙수저들이지.

[박용채 칼럼]흙수저들의 게임, 금수저들의 게임

투기? 케인스는 투자와 투기를 장기적 성장에 기댈지, 대중의 심리적 변화를 노릴지의 차이라고 정의했지만 누가 딱 부러지게 구분하겠어. ‘내로남불 정도의 차이’라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말이 더 설득력 있더라고. 그래도 정부의 헛발질은 정도가 심했어. 내내 뒷짐 지다 느닷없이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나서고. 반발이 커지자 다시 주워 담고. 그때마다 얼마나 출렁였어. 물론 광풍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지. 그렇다고 정부가 흥분해 경제 활동을 금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해. 문제가 불거지면 문부터 닫게 하겠다는 발상은 영락없는 꼰대 아닌가. 따지고 보면 꾼들은 이미 먹튀했지. 결국 뒤늦게 뛰어든 흙수저들에게 몽둥이질한 꼴이야. 선의의 피해자 보호는커녕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잖아.

코인이 지불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약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아. 하지만 블록체인이 산업지도를 바꿀 잠재력을 갖고 있는 혁신적 기술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도 없잖아. 일본을 봐. 최근에는 ‘가상화폐소녀’라는 걸그룹까지 등장했어. 월급을 비트코인으로 준다고 하더군. 우리의 하이마트 같은 가전 양판점 비쿠카메라에서는 결제도 가능하다고. 그에 비하면 우리는 여태껏 코인의 정의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상태야.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겠어? 이번 사태의 교훈은 새로운 현상을 제도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걸 거야. 하지만 수업료가 너무 비싸. 그나마 그 비용은 늘 흙수저들이 분담하고.

사실 코인은 강남 집값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그쪽은 물이 달라. 하루에도 1억원씩 오르잖아. 국세청 조사를 보니 부모 돈으로 강남 아파트를 사고 증여세를 탈루한 금수저들이 한둘이 아니더군. 하긴 흙수저들이 월급 모아 어느 천년에 강남 아파트를 장만하겠어. 정도가 너무 심해. 더구나 부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매우 불공평한 게임이잖아.

강남 4구에 국한된 데다 희소성 때문에 값이 오른다고?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너무 단순하고도 소박한 주장 아닌가. 강남의 수급구조는 과거와 다름없어. 교육이나 주변환경도 마찬가지잖아. 그런데도 값이 오른 것은 투기적 수요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지. 이는 공급확대를 통해 진정되지 않아. 공급을 늘리면 투기심리는 되레 확산될 거야. 새 아파트가 나오는 대로 프리미엄이 붙는 게 이의 방증 아닌가.

역대 정부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밝혀 해법을 마련해야 했지만 늘 대증요법뿐이었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정책이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는 되레 경기부양을 부동산에 맡겼어. 이러니 강남불패가 신화가 되는 건 당연했지. 대출규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양도세 강화 등 새 정부의 정책에도 강남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지. 건설사, 금융회사, 언론 등 부동산이 부양되면 재미를 보는 곳들도 그들의 우군이야. 오죽하면 정부가 보유세를 강화한다고 해도 오름세가 꺾이지 않을까. 세금 내는 것보다 집값이 훨씬 더 많이 오르는데 보유세 무서워 상승세가 꺾이겠냐는 의견도 있지.

하지만 광기의 투기수요를 누를 수 있는 최종 열쇠는 명확해. 불로소득에는 어마어마한 세금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시켜 주는 거야.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야. 행여 선거나 지지율을 의식해 일회성으로 접근할 경우 백전백패일 거야. 보유세는 강남 집값을 잡는 측면뿐 아니라 자산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해.

부자들의 저항? 며칠 전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가상통화 규제에)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더군. 부동산에 똑같이 적용해 보자고.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 그나마 이것이 거품이 꺼질 때의 고통보다는 훨씬 부담이 작지.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 흙수저들도 품위 있고 적절한 주거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