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부가 기지촌 운영하며 미군 위안부 성매매 조장" 첫 판결

2018.02.08 16:23 입력 2018.02.08 18:45 수정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소송을 대리한 변호인단 등 단체가 8일 항소심 선고 결과 뒤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광연 기자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소송을 대리한 변호인단 등 단체가 8일 항소심 선고 결과 뒤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광연 기자

과거 주한미군을 상대로 여성들의 성매매가 이뤄지던 기지촌을 운영한 정부에 대해 성매매를 방조하고 조장한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정부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외화를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성을 수단화했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민사22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8일 기지촌 미군 위안부 여성 117명이 “기지촌을 불법으로 운영하며 격리수용 등을 한 데 따른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 모두에게 300~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57명의 기지촌 위안부들에게만 각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1심 판결에 비해 국가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가 전국의 기지촌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사실상 성매매를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부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공고화하고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성으로 표상되는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의 인격 자체을 활용했다”며 “이는 인권존중의 의무를 위반할 뿐 아니라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유동 위안부의 고정 수용’ ‘외국군 상대 성매매 협조 당부’ 등의 내용을 담은 과거 정부부처와 지방단체의 문건 등을 토대로 기지촌을 통한 정부의 성매매 조장 행위가 전국적으로 자행됐다고 설명했다. 또 기지촌 담당 공무원들이 기지촌 위안부들에게 성매매 방식을 가르치는 등 이른바 ‘애국교육’을 실시해 성매매를 적극 조장했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성병 보유 의심자로 지목된 기지촌 위안부들을 낙검자수용소에 강제 격리한 뒤 페니실린 등을 일방적으로 투약한 정부의 위법행위를 1심보다 넓게 인정했다. 앞서 1심은 1977년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생기기 전에 강제 수용된 기지촌 위안부들에 대한 배상 책임만 인정했으나, 항소심은 규칙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의사의 진단 없이 강제 격리된 이들에게도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발적으로 기지촌에 들어온 위안부들에 대해서도 정부의 배상책임이 존재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일부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시작했더라도, 정부가 이들의 성을 수단으로 삼은 이상 정신적 피해를 입게 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직접 법정에 온 일부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은 선고 결과를 들은 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의 대리인인 하주희 변호사는 “재판부가 국가의 보호의무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기지촌 위안부들이 요구한 국가의 책임을 대부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며 “현재 국회에 관련 법률안도 발의돼있는 상황에서 기지촌 위안부들의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