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침과 가르침

2018.03.27 21:04 입력 2018.03.27 21:10 수정

열두 살 때의 여름에 자전거를 배웠다. 옆집 친구는 아버지가 퇴근하면 아버지 자전거를 끌고 나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다. 둘은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학교 운동장까지 자전거를 함께 끌고 갔다. 아이 둘은 너끈하게 태울 만큼 짐받이가 큰 짐자전거는 둘이 끌어야 좌우로 기울지 않았다. 운동장에는 우리처럼 자전거를 배우는 애들이 늘 두어 팀이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 자전거가 가장 컸다. 우리는 서로 번갈아 가면서 뒤를 잡아줬는데, 닷새가 지나도록 둘 다 손만 떼면 넘어져서 무릎이 성하지 않았다. 두어 시간 배우고도 운동장을 쌩쌩 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많이 더딘 걸 너무 큰 자전거 탓으로 돌렸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가을에는 운동장을 혼자 달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깨우침과 가르침

달리는 것은 스스로 깨달았지만, 브레이크 쓰는 법을 가르쳐 준 건 아버지였다. 추석 성묫길에 자전거를 타고 따라나선 딸이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당기지 않은 채 내달리는 걸 보고 기함한 아버지는 왼쪽 브레이크 레버와 오른쪽 레버가 어떻게 다른지 꼼꼼하게 알려 줬다. 겨우내 고등학생 아들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는 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브레이크 쓰는 법을 배운 그날을 떠올렸다.

“저는 평소에 아들한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대학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는 어떻게든 자녀를 명문대학교에 보내려고 기를 쓰는 엄마들과 자신이 다른 것을 내심 뿌듯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들이 가슴 통증이 심해서 병원 검진을 받아보니 웬걸 자신의 태도가 도리어 아들에게 짐이 되어 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의사 말이 무작정 달려보라고 한 게 잘못이라네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더라고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삶이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달리는 것은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스스로 깨우쳐도 때때로 속도를 줄이며 핸들을 적당하게 돌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건 달려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몫인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잘 달렸던 것일까? 열일곱 살 아들을 둔 엄마는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어른 노릇하기 참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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