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의료수가 ‘원가+a’ 보장 안 하면 병원·문재인케어 둘 다 망해”

2018.04.09 21:45 입력 2018.04.10 13:55 수정

‘문재인케어’ 설계자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

[김민아의 후 스토리]⑦“의료수가 ‘원가+a’ 보장 안 하면 병원·문재인케어 둘 다 망해”

미국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한국인은 대체로 애국자가 된다. 심각한 영리화·상업화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의료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다. 아니, 구멍투성이다. 국민건강보험을 갖췄으나,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대부분 민영병원이다. 공공병상 비율은 10% 수준으로 미국보다도 낮다. 가계가 의료비를 직접부담하는 비율은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8배인데, 건강보험 보장률은 OECD 평균(80%)에 크게 못 미치는 60%대 초반에서 10여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보험이 적용되는 부분(급여)이 꾸준히 늘어났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비급여)의 덩치는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는 실손보험과 ‘결합’하면서 의료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케어’)이 미용·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의학적 필요성이 있는 치료행위 전부를 건보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비급여 풍선 효과’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3800여개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해 건보 보장률을 현재의 63.4%에서 70%로 높일 방침이다.

‘문재인케어’가 다시 뉴스의 전면에 떠올랐다. 이달 1일부터 상복부 초음파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다. 때마침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선 ‘울트라 우파’ 최대집 후보가 당선됐다. 다음달 취임하는 최 당선자는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 저질의료·불법의료가 판치게 된다며 집단휴진 등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복지부는 의협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유포한다며 반박하고 있다. 시민은 혼란스럽다. ‘문재인케어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만난 이유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김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때 의약분업실행위원회 위원으로 의약분업을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후기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냈다. 당시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대선 때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 공동본부장으로 ‘문재인케어’ 등 공약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사무소에서 이뤄졌다.

건강보험 하나로 국민의료 보장
의사진료 가능하도록 보장성 강화

- ‘문재인케어의 설계자’가 보는 문재인케어의 목표는 뭔가.

“첫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서 국민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 보장을 받도록 하는 데 있다. 본인부담 수준을 낮춰서, 필요할 때 조기진단·조기진료가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둘째, 본인부담금만으로도 가계파탄이 일어날 수 있는데,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해서 가계파탄을 확실히 막고자 한다.”

- 문재인케어가 과잉의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의료 이용량은 늘어날 것이다. 늘어나는 건 좋은 측면도, 나쁜 측면도 있다. 기존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아 과소진료되는 서비스가 있다. 공급자들이 공급을 기피하게 되는…. 그런 부분은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나쁜 측면은 필요보다 더 많은 의료 소비를 하는 건데…. 의학적 정당성이 없는데도 이용량이 늘어나는 일은 한계가 있다. 정부도 모니터링을 하고,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 일정한 조치를 하게 될 것이다.”

- 동네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을 기피하고,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으로 환자가 집중되지 않을까.

“별개의 과제로 봐야 한다. 각 의료기관의 기능과 상호관계를 정립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서울 소재 병원으로의 집중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에 좋은 의료인들이 많이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풀리는 문제다.”

- 30조6000억원의 재원으로는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의료계 일부에선 70조~120조원까지 소요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30조6000억원은 복지부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추계를 한 것이다. 실제 드는 액수는 물론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차이가 얼마나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건강보험 수가 수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소요 재원 규모가 달라진다. 수가 수준은 정부와 의료계, 국민 대표가 협의해 결정한다. 어느 일방이 결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5년 동안 단계적으로 보장성을 확대하고 수가 설정도 다시 해나갈 것이므로 최종단계에 가야 어느 정도 소요될지 밝혀질 것이다. 그 결과는 예측보다 늘 수도, 줄 수도 있다. 늘어난다고만 할 수는 없다. 변동사항이 생기면 당연히 국민들께 다시 말씀드려야 한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건보공단 서울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의사들이 뭘 걱정하는지 안다. 문재인케어는 수가 조정 과정에서 ‘원가 플러스알파’ 식으로 적정 이윤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건보공단 서울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의사들이 뭘 걱정하는지 안다. 문재인케어는 수가 조정 과정에서 ‘원가 플러스알파’ 식으로 적정 이윤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재정 파탄? 보험료 매년 거둬 써
적립식 국민연금과 혼동해선 안돼

- 2026년 이후에는 누적 적립금이 모두 소진돼 건보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건강보험 준비 적립금이 20조원을 넘었다. 과다하게 쌓여 있는 거다. 많은 시민단체에서 ‘급여를 확대해야지 왜 이렇게 쌓아놓느냐’고 해왔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적립금 중 10조원 정도를 문재인케어 재원에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이 되면 누적 적립금이 모두 소진된다’는 말은 계산상 가능하지만, 재정파탄과는 무관하다. 건강보험 재정을 국민연금 재정 문제와 혼동해선 곤란하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계속 돈을 내다 나중에 때가 되면 타 쓰는 적립 방식이다.그래서 연금은 고갈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매년 보험료를 거둬 매년 쓰는 구조다. 살림할 때 월급 받아 그 월급으로 생활하는 걸 떠올리면 된다. 이론적으로 당해 연도에 때로는 적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게 재정파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항목별 마진 폭도 똑같이 맞춰
이윤 따른 선별적 치료행위 막고
본인 부담 상한제로 환자 짐 덜어

- 의사협회의 집단휴진 압박에 대해 비판론이 크다. 하지만 낮은 의료수가를 그동안 비급여로 메워온 측면은 있지 않나.

“원론적으로 답하겠다. 싸움은 붙이지 마시고…(웃음). 비급여 쪽은 돈이 많이 들어오고 건강보험 쪽은 돈이 적게 들어오니까 ‘코스트 시프트(cost shift)’라고 수입을 이전해서 전체 수지를 맞추는 방식을 써온 게 사실이다. 지금 의사들이 비급여를 급여화하며 원가보다 낮은 수가를 매길 거라고 걱정하는 듯하다. 문재인케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원가+α(플러스 알파)’로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매길 거다. 원가+α 보장 안 하면 병·의원 다 망하고 문재인케어도 안된다. 또 한 가지 원칙은, 항목별로 마진 폭을 균일하게 하는 일이다. 이윤 폭이 다르면 이윤 폭이 큰 치료행위만 하려 하고 작은 쪽은 안 하게 된다. 마진 폭을 균일하게 맞춤으로써 의사들이 의학적 판단대로 진료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한다. 문재인케어라는 동전이 있다고 치자. 그 앞면은 국민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 보장을 받도록 하는 것이고, 뒷면은 의사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의협 쪽에선 상복부 초음파 검사에 보험이 적용되자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정해진 횟수를 벗어난 검사는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과소진료가 일어날까? 그렇지 않을 거다. 적절한 검사를 못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복지부는 “검사를 몇 회 하든 모두 보험이 적용되며, 불법이 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달라질 뿐”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증상 변화가 없는 상태의 반복 검사나 단순 초음파 등은 환자가 검사비용의 80%를 부담하게 된다.)

김 이사장은 의료계 내부적으로 문재인케어에 대한 입장이 다를 것이라고 봤다. 문재인케어를 하면 낮은 수가를 올려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지 않는 병원들은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금 의사들이 손해볼 거라고 하는 얘기는 사실 ‘카더라 통신’에서 비롯된 거다. 실제로는 동네 병·의원이나 공공병원 등은 수지를 맞출 수 있게 돼 경영이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대한병원협회가 의협과 달리 문재인케어를 두고 정부와 협의를 계속하는 데 대해 묻자 “병원협회는 경영을 해봤거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조사를 보니, 국민 10명 중 6명이 ‘보장 확대는 찬성하지만, 추가 부담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향후 소요 재원이 예상보다 늘어날 경우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지 않나.

“혜택은 보고 싶지만 부담은 적게 하고 싶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건강보험의 경우 일반 조세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달라. 보험료를 내고 쓰는 게 폐쇄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어디로 새나가는 일이 없다. 국민과 잘 논의하면 합당한 부담을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보험료 부과체계도 7월부터 개편된다. 지역 가입자의 약 80%는 보험료가 내려간다. 재산에 대해 매기던 부분이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기준 이상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는 보험료를 내게 된다. 지금까지 내야 할 분들이 ‘무임승차’한 것이다.”

- 보험료를 새로 내게 된 사람들은 반발할 것 같다. 보험료는 조세는 아니지만, 광의의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통칭 ‘국민부담’을 올리는 일이 어렵다. 그러나 지금보다 과감해질 필요가 있고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설득해야지, 회피해선 안된다. 강력한 복지국가로 가는 핵심 장애요인이 증세불가론, 세금폭탄론이다.”

- 건보공단의 인력·조직이 방만하다는 비판도 있다.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 외에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까지 5대 사회보험을 동시에 걷는 역할을 한다. 업무가 방대하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급여/비급여
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본인이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건강보험 수가
정부가 정해놓은 의료비로서 환자 본인 부담금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지불금을 합한 총액을 뜻한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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