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을 위한 방탄소년단 초급 가이드

2018.06.09 12:58

아재들을 위한 방탄소년단 초급 가이드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2018 빌보드 뮤직 어워즈’ 정규 3집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2018 빌보드 뮤직 어워즈’ 정규 3집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

현재 대중문화계 최고의 ‘핫 피플’은 방탄소년단이다. K팝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들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수는 있어도 이들의 이름을 모르기란 쉽지 않다. 음악을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겐 놀라운 일이고 감탄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 특히 최신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기성세대들에게 방탄소년단이 일으키고 있는 신드롬은 실감이 좀처럼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궁금증 투성이다. 이들이 가진 궁금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진짜 미국에서 인기 있는 게 맞나.” “다른 아이돌 가수들과 어떻게 다른가.”

중학생 딸을 둔 50대 회사원 강재형씨는 “얼마 전 딸과 함께 TV를 보다가 7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보고 ‘저 친구들이 방탄소년단 맞지?’ 했다가 가혹한 핀잔만 들어야 했다”면서 “아무리 봐도 춤과 노래, 외모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알아보는 것부터가 난관”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빌보드 1위라는데 솔직히 나 같은 사람들은 체감이 안된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강씨와 같은 중장년층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궁금증을 모아봤다. 소위 ‘아재들을 위한 방탄소년단 현상 초급 안내서’쯤으로 해두자.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멤버들을 비롯해 10년 이상 아이돌 ‘덕질’(적극적인 팬활동)을 해 온 대중음악 팬들, 대중음악계 관계자 등의 도움말을 참고해 정리했다.


-‘빌보드 200’. 그렇게 대단한 건가.

“대단한 것 맞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가 세계 최대 음악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앨범이라는 인정을 받은 것이니까.”

-예전에 싸이도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차트에서 2위를 하지 않았나. 강남스타일은 거의 누구나 아는 노래였다면 방탄소년단 노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먼저 빌보드 메인차트에 대해 설명하겠다. 여기엔 ‘빌보드 200’, ‘핫 100’ 이렇게 두 종류가 있다. ‘빌보드 200’은 인기 앨범 순위, ‘핫 100’은 인기곡 순위를 말하는 거다. 앨범이 인기가 있다는 것은 충성된 팬덤이 있다는 의미이고, 노래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즉, 여러 곡이 담겨 있는 앨범은 팬들이 많이 사지만 그저 음악을 즐기는 대중들은 굳이 그 앨범을 사지는 않는다. 대신 좋은 노래가 있다고 하면 음원을 다운로드 받거나 스트리밍해서 듣는다. 그래서 흔히 ‘어떤 가수의 특정한 곡이 차트 1등을 했다’고 말할 땐 ‘핫 100’에서 1등을 했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강남스타일’은 ‘핫 100’ 2위에서 7주간이나 머물렀다. 그러니 누구나 아는 대중적인 곡이 될 수밖에.”

-그럼 ‘빌보드 200’보다 ‘핫 100’이 더 좋은 건가.

“뭐가 좋다고 우열을 가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 앞서 설명했듯, 두 차트의 의미와 기준이 좀 다르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이번에 발표한 앨범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도 ‘핫 100’ 차트에서 10위를 차지했다. 상위권에 오래 머무른다면 역시 열성팬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알려지는 노래가 되지 않을까.”

-좀 더 원초적인 질문을 하자면, 방탄소년단이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가. 솔직히 빅뱅이나 소녀시대, 엑소까지는 TV에서도 봤던 기억이 있고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대충은 알겠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좀 낯설다.

“TV에서 자주 못 봐서 그렇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기가 엄청난 건 분명하다. 초·중·고생 자녀를 둔 경우라면 굳이 말 안해도 알 거다. 예전엔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방탄소년단 팬임을 자처하는 30·40대 여성들도 많다.”

-방탄소년단은 SM이나 YG, JYP 같은 대형기획사 소속인가?

“그렇지 않다. 이들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방시혁이 만들었다. 방시혁은 K팝 팬들에게 꽤 유명한 작곡가다. 방탄소년단을 ‘흙수저 아이돌’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기존의 대형기획사가 아닌 신생 중소기획사 소속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비유는 대형기획사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자조에서 나온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그렇다. 엄밀히 말해 국내 음악시장에서 아이돌은 기획사가 만들어낸 상품이다. 기획사의 파워나 규모에 따라 해당 가수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TV방송이다.

대형기획사 아이돌은 연습생 시절, 데뷔 과정부터 방송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출된다. 때문에 일찌감치 대규모 팬덤이 형성된 상태에서 데뷔하는 경우도 많다. 데뷔 콘서트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한 신인 그룹도 있었다. 중소형 기획사 출신 아이돌 가수들은 아예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방탄소년단이 SNS를 잘 활용한 것은 현실적인 불리함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방탄소년단 곡 ‘DNA’가 빌보드 ‘핫100’ 85위를 기록했다는 보도 / 빅하트엔터테인먼트

지난해 9월 방탄소년단 곡 ‘DNA’가 빌보드 ‘핫100’ 85위를 기록했다는 보도 / 빅하트엔터테인먼트

-요즘 연예인들이라면 다 SNS를 하지 않나. 방탄소년단이 특별히 이를 더 잘 활용했다고 하는데 뭐가 달랐다는 건가.

“물론 이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뉴미디어를 일찌감치 많이 활용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미 연습생 시절부터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 등으로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렸고, 감정상태나 일상을 전달했다. 이는 여느 아이돌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아이돌은 대체로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SNS도 그 연장선인 경우가 많다. 연출되거나 기획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장이다. 그래서 SNS로 만나는 스타들이 팬들에게는 여전히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해 ‘곁에 있는 친구’ 같은 인상을 줬다.”

-주로 어떤 내용을 올렸나.

“유튜브에서 ‘방탄 TV’라고 검색해보면 이들이 올린 동영상이 나오는데 ‘방탄 로그’ ‘방탄 밤’이라는 식의 세부 채널만 20개 넘게 있다. 각 채널마다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의 동영상이 올라가 있다. 개별 멤버들이 카메라를 마주 보고 앉아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 형식으로 독백을 하기도 하고, 함께 춤을 연습하거나 대기실에서 놀면서 농담을 하는 모습도 있다. 무언가를 먹는 ‘먹방’도 있다. 격식도 구애도 없이 모든 일상과 생각을 팬들과 공유하고 팬들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순간 순간의 감정, 팬들에게 전하는 말들도 수시로 트위터에 띄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편지를 받은 이들은 트위터에 달을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무지하게 많겠다.

“활발한 활동을 하는 팬들 중에서 아직도 이들이 올린 영상을 다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7명의 멤버가 연습생 시절부터 꾸준히 올려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쌓인 분량은 다른 가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솔직히 이해가 안된다. 가수가 SNS에 영상이나 글을 많이 올리는 게 무슨 힘이 되나.

“팬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질문인 것 같다. 특정 정치인을 좋아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사람이 나온 사진을 찾아보거나 SNS를 뒤지면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글을 남겼는지 챙겨보는 경우가 많지 않나. 팬덤의 ‘덕질’도 그와 비슷한 거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무엇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또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찾아보는 것은 ‘덕질’의 큰 재미다.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 시대라고 하지 않나. 10대나 20대 상당수는 TV 대신 유튜브를 본다. 유튜브에 자신의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크리에이터들 중에서 슈퍼스타가 나오는 시대 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아무튼 방탄소년단이 그동안 쌓아왔던 활동들은 요즘 젊은 층의 감성, 행동 패턴과 운좋게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런 팬덤을 만나려면 우선 가수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 아이돌 시장에서 이들은 어떻게 달랐나.

“방탄소년단은 2013년에 데뷔했다. 초창기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다가 2015년 <화양연화>라는 앨범을 통해 소위 ‘빵 터졌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까지 2년간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전에 눈 밝은 이들 사이에서 이들의 춤이 예사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먼저 돌았다.”

-팬들은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기성세대의 눈에 아이돌 그룹의 춤은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럴 수 있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다른 점이 보일 거다. 방탄소년단의 춤은 단순히 칼군무를 춘다기보다는 기승전결의 서사가 있는 무용극 같다는 느낌을 준다. 동작 하나하나가 격렬하고 기교적인 면도 강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퍼포먼스 그룹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물론 춤만 잘 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춤을 보고 관심을 갖게 돼 노래를 듣고 가사에 공감하고 즐기게 됐다는 ‘입덕기’를 갖고 있는 팬들이 많다. ‘당대의 아이돌’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남자고등학교 댄스부가 어떤 춤을 추느냐를 보는 것이다. 2015년부터 방탄소년단의 춤을 추는 곳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방송 화면을 보니 미국 팬들의 반응이 엄청나게 열정적이더라. 보면서도 진짜인가 싶었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성적은 이번에 갑자기 얻은 것이 아니다. 메인차트는 아니지만 2015년부터 빌보드 월드디지털 음원차트를 시작으로 꾸준히 해외 팬들의 반응을 얻었다. 해외 팬들의 증가가 체감된 것은 2016년 빌보드 소셜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다. 이 차트는 팬들의 SNS 활동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인데, 이때 아리아나 그란데, 리하나를 제쳤다. 지난해 빌보드 시상식에서는 팬들의 투표를 근거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 발표했던 앨범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7위에 오르기도 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방탄소년단의 신곡 ‘페이크 러브’를 스트리밍하자는 내용의 트위터 해시태그.

트럼프의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방탄소년단의 신곡 ‘페이크 러브’를 스트리밍하자는 내용의 트위터 해시태그.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 ‘강남스타일’은 코믹한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를 통해 폭발력을 발휘하게 됐다면, 방탄소년단은 오랜 기간 쌓여온 존재감이 에너지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 등 많은 K팝 가수들의 활약 덕분에 해외에도 K팝 장르를 즐기는 팬들이 꽤 생겼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한국의 가수들을 검색하고 영상을 꾸준히 접한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좋아하고 환호하는 반응을 찍어 ‘리액션 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그것으로 국내 K팝 팬들과 댓글을 주고 받으며 소통한다. 또 노래할 때 따라 부르며 외치는 응원법,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기죽지 않게 하려는 열정에서 비롯되는 온라인 투표나 조공문화 등 특유의 팬덤 문화도 수용해 즐기고 있다. 심지어 댓글에서 ‘OPPA’(오빠)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해외 팬들에게도 방탄소년단의 강렬한 춤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 안무 영상에 외국 팬들이 써놓은 댓글을 보면 화려한 춤에 감동했다거나 멋지다는 찬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뮤직비디오 동영상 댓글에도 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현재 미국 주류 무대에는 방탄소년단처럼 트렌디한 음악에 칼군무까지 동시에 선보이는 팀을 찾기 힘들다. 그러니 더더욱 미국의 10대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타임>지도 ‘방탄소년단의 멋진 외모와 마법 같은 춤동작이 수많은 팬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아이돌 가수들은 주로 사랑노래를 많이 부르지 않나. 이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다른 아이돌 가수들과 다른가.

“이들의 노랫말을 보면 불안한 청춘, 아픔, 성장과 위로 등의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담았다. 이런 부분이 팬덤의 확장성, 결속력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 결국 이들의 음악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폭발적 에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고민을 그들의 도구로 담아냈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방탄소년단은 얼마나 성장할까.

“국내 음악계는 물론이고 주류 무대에서도 이들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결과물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역대 최강의 팬클럽으로 불릴 만한 ‘아미’에게 맡겨두지만 말고 조금 더 애정과 관심을 갖고 함께 지켜봐 주는 게 어떨까. 그 전에 7명 멤버의 이름과 얼굴부터 알아봐 주신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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