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분노를 혐오로 왜곡하지 말라” 혜화역 시위 6만명 집결

2018.07.07 18:34 입력 2018.07.08 10:09 수정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한 여성이 ‘진정 두려운 건 몰카, 강간이다’라는 문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유진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한 여성이 ‘진정 두려운 건 몰카, 강간이다’라는 문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유진 기자

“여성의 분노를 혐오로 왜곡하지 마라. 우리의 분노는 단순한 한풀이나 원한이 아니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에 이른 7일 서울 도심에 ‘빨간 물결’이 일었다. 성 편파 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여성들이 한 달 만에 다시 ‘결집’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불편한용기’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앞에서 주최측 추산 6만명(오후 6시 기준·경찰 추산 1만9000여명)의 여성이 참석한 가운데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를 열었다. 이는 지난 5월19일과 지난달 9일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2차례 열렸던 집회에 이어 세번째다.

집회 시작에 앞서 주최 측은 “1차 집회 2만명, 2차 집회 4만5000명이라는 한국 여성 시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인원이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며 “그러나 청와대의 답변은 부실했고 검경은 변명만 늘어놨으며 실질적으로 제도가 개선되거나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여성 경찰관 90% 비율 임용 ▲여성 경찰청장 임명 ▲문무일 검찰총장 사퇴 ▲판검사 등 고위 관직 여성 임명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촬영·유포·판매·구매자에 대한 강력 처벌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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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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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여성 경찰관 90% 요구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며 “경찰이 여성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경찰 집단이 남초·남성중심적 조직이었기 때문”이라며 “성범죄 피해자들이 제대로 조치를 받기 위해서는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 내부의 성평등부터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상적으로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대상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 피해자가 됐을 때 국가로부터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우리는 시달려 왔다”며 “7월 더위보다 더 뜨거운 우리의 분노를 저들에게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성차별 편파수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풍자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했던 발언이 발단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수치심, 명예심에 대해서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수사기관의 ‘성차별 편파수사’ 논란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반적인 처리를 보면 남성 가해자의 경우에 구속되고 엄벌이 가해지는 비율이 더 높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여성 가해자인 경우는 일반적으로 가볍게 처리됐다. 그게 상식”이라며 “그렇게 비교해 보면 편파수사라는 말이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주최측과 참가자들은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하며 여성의 표를 가져가 당선된 문 대통령은 저희를 더이상 실망시키지 말라”며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니가 말한 검거율 96퍼센트, 뜯어보니 기소율 31퍼센트” 등의 구호를 외쳤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여성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여성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여성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서 여성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이날 시위에서도 2차 시위와 마찬가지로 삭발식이 진행됐다. 4명의 여성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긴 머리를 잘랐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마다 참가자들은 ‘상여자’를 연호했다. 삭발식에 참가한 한 여성은 “지금까지 여자이기에 받은 크고 작은 차별들이 있다”며 “이제 머리를 자름으로써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남들이 정해놓은 틀 속에 박힌 채로 더 이상 살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어 “전세계에서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불법촬영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없다”며 “공공장소에서조차 언제 어떻게 불법촬영을 당할지 모르는 채로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불안감을 직시하고 대답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적장애 중학생을 성폭행한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은 반면, 40년 이상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여성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 등 사법기관의 ‘편파 판결’ 사례를 언급하며 “이래도 여성 가해자가 가볍게 처리됐다는 것이 상식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외에도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전주, 창원, 청주, 천안, 평택 등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시위대는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혜화역) 방향 약 700m 구간 4개 차로를 점거하고 집회를 진행했다.

이유진 기자

이유진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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