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됐던 화장, 벗어나니 꿈이 생기고 행복”

2018.11.05 21:05 입력 2018.11.06 14:33 수정

‘탈코르셋’ 영상으로 화제된 뷰티 유튜버 배리나씨

화장법 등 미용 콘텐츠를 올리던 유튜버 배리나씨는 지난 8월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해 ‘탈코르셋’ 운동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29일에 만난 그는 “여성들에게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화장법 등 미용 콘텐츠를 올리던 유튜버 배리나씨는 지난 8월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해 ‘탈코르셋’ 운동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29일에 만난 그는 “여성들에게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예쁜 외모가 권력이라고요? 클렌징 한 방이면 사라질 일회성 권력은 쟁취하고 싶지 않아요.”

우울증에 2년여 집안 생활만
화장은 자신감 주었고
유튜브선 꽤 인기 얻었지만,
탈코르셋 운동 접하고 용기

유튜버 배리나씨(21·본명 배은정)는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화장·날씬한 몸매·긴 머리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거부하는 운동을 일컫는다. 그는 지난 8월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화장법 등 미용 콘텐츠를 올리던 뷰티 유튜버가 화장을 지우면서 탈코르셋을 선언하는 이 영상은 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가 됐다.

최근 탈코르셋에 관한 책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를 낸 배씨를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났다. 키 163㎝에 체중이 96㎏인 그는 이 책을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의 외모 지상주의 사회 생존기”라고 소개했다. “초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돼지새끼야, 자살해’ 하면서 저를 괴롭혀서 열 살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어요.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저를 혐오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런 일을 밥 먹듯이 겪었어요.”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배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캐나다에서는 저를 뚱뚱하다고 놀리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반 친구들 모두와 친해져서 학교 친구들과 생일파티도 난생 처음 해봤어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됐는데, 엄마는 아직도 ‘캐나다에서 계속 살았다면 너가 더 행복했을 것’이라면서 미안해하죠.”

우울증, 대인기피증, 섭식장애 등에 시달리면서 2년 넘게 집 밖에도 나오지 못했던 배씨는 “생존을 위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 ‘꾸미니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게 됐다”면서 “온종일 뷰티 유튜버 영상만 보고, 한 달에 50~60만원어치 ‘신상’ 화장품을 사들였다”고 했다. 구독자 2만명의 뷰티 유튜버가 된 계기는 지난해 8월 배씨가 별 뜻 없이 올렸던 메이크업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다. 그는 “댓글 절반은 제 외모를 비하하는 악플이었지만 ‘화장 잘한다’, ‘다음 영상도 찍어달라’는 응원 댓글을 읽으면서 용기를 냈다”고 했다.

배씨는 올해 초부터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서 영페미(젊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번지기 시작한 ‘탈코르셋 운동’을 보며 용기를 냈다고 말한다.

나도 누군가에 용기 주려고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펴내

그는 “미투 운동 이후 제 또래 여성들이 머리를 자르거나 화장품을 부순 사진을 SNS에 올리는 걸 보면서 처음 탈코르셋 운동을 접했다”면서 “몹시 자유롭고 행복해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남들의 시선 때문에 화장을 하는 것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영상을 올리기 직전까지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듯 저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탈코르셋 영상 제작 배경을 밝혔다. 그는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화장하고 싶다’면서 제 영상에 댓글을 단다”면서 “그 친구들에게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쇼트커트 스타일에 민낯으로 나온 배씨는 “탈코르셋을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돈과 시간이 절약된다고 그는 말한다. “다이어트 한약, 화장품, 퍼스널 트레이닝 비용 등으로 한 달에 400만원 넘게 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요. 가슴까지 닿는 긴 머리를 말리고 화장하는 등 외출 준비하는 데에만 2시간이 걸렸는데 그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있고요. 제 자신이 소중해지니까 하기 싫어했던 운동도 재미있어졌어요. 덕분에 10㎏이나 살도 빠졌죠.”

그는 “탈코르셋 이후 꿈을 찾게 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씨는 “전에는 꾸미는 것에만 집착해서 저에 대한 비전에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탈코르셋 이후 제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찾게 됐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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