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세대

2019.09.01 20:47 입력 2019.09.01 20:49 수정

대학에서 처음 만난 제자들이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하자는 대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고’, 공대 수학 수업을 듣고, 공모전을 하느라 밤을 불사른 첫 제자가 취업을 했다. 처음 합격한 회사는 중소기업이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연봉의 얼마간을 보조금으로 지원받는 회사였다. 중소기업 가면 일 많이 하고 임금은 적어 주저하는 제자에게 “더 좋은 회사 붙기 전까지만 한다고 생각해” 하며 달랬지만, 계약직 연구원 일자리가 나자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박봉이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녀보겠다고 한다. 식사를 같이한 학생들은 동기가 회사에서 월급을 300만원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300만원. 10년 전 대기업 신입사원 세전 월급이다. 국민총소득(GNI)이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300만원쯤 받는 게 대수인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월 200만원 안짝의 연봉구조가 보인다. 중소기업, 대학 계약직, 도시재생센터, 시민단체, 사회적기업, 서비스업. 모두 최저임금에 수당 등이 조금 붙는 수준. 월급 몇 십만원 차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양승훈의 공론공작소]‘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세대

이철승의 책 <불평등의 세대>를 따르자면 노동시장의 위치를 정하는 건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조직 여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규직 여부. 대기업 다니는 정규직이거나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이 조직된 회사의 정규직이면 상층에 속하게 된다. 대기업이 아니고 노동조합이 없더라도 정규직이면 중층에 속한다. 졸업생들이 향하게 되는 회사는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이라 노동조합이 있어도 연봉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300만원 월급을 받을 확률이 높지 않다. 지역에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혁신도시를 짓고 공기업들을 대거 이전시켰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는 수도권 인재들과 거점 국립대 응시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방대생들이 질 좋은 일자리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쟁에서 밀렸다고 임금이 최저임금이라는 바닥 수준에서 올라가야만 하는 걸까. 결국 임금격차라는 분배 문제가 걸린다.

젊은 세대에게 주어진 몫 자체가 작다. 작은 몫을 두고 계급과 학벌과 젠더가 엉켜 경쟁압력을 계속 높이는 것이다.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생각났다. 대기업에 손쉽게 취업하고,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를 면하고, 연공서열제로 고소득을 쟁취하며, 잡 셰어링을 위한 임금피크제까지도 무력화시키고 정년연장까지 시도하는 86세대. 세대 내 경제적 불평등(계급불평등)은 언제나 세대 간 불평등보다 심하지만, 한국의 86세대와 다른 세대를 비교할 경우 세대 간 불평등을 무시할 수 없다. 세대 간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어 당시의 1980~1990년대생들은 그냥 두면 세전 88만원이라는 저임금에 갇힌다는 것. <불평등의 세대>는 예언의 실현을 데이터로 드러낸다. 86세대는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 복합체인 노동시장 상층부를 점유한다. 중소기업-비정규직-비노동조합과의 자원 공유는 없었다. 더불어 86세대는 2004년을 거치며 정치권의 다수파 세대가 됐다. 1970~1980년대생들의 의석수는 86세대의 30~40대 시절 비중에 턱없이 못 미친다.

<88만원 세대> 저자들은 해법으로 청년들이 88만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생태주의자들의 생활양식을 택하거나, 사회가 젊은 세대의 소득과 직업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노동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공진화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전한다. 20대에게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 던지라 한다. 출간 후 10년간 운동과 정책은 반값 등록금이나 최저임금 상향, 청년수당, 청년주거에 매진했고 부분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노동시장 상층의 몫을 나누려는 시도는 미약했다. 노동시장 상층은 86세대가 여전히 다수파다. 지역과 젠더 관점에서도 불균등은 개선이 더디거나 외려 심화됐다. 경쟁압력 속에서 ‘텐션’이 떨어진 청년들은 적게 벌고 쓰며 ‘일상을 지키는 데’ 적응해 버렸다. ‘텐션’이 높은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기민하게 찾기에 급급해졌다. ‘더 작은 민주주의’의 강조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분배정치에서 청년 이탈을 만든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일에서 드러나는 분노의 목소리는 권력과 자원을 획득한 이들이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만드는 ‘기울어진 운동장’, 즉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다. 말과 글로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의 세대와 계급이 만들어낸 기득권은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 기득권의 실체가 드러나면 전선도 분명해진다. 이철승은 “한반도 정주민들은 때로는 외부의 위협에 너무 늦게 반응했”지만 “필요성을 깨달으면, 어느 부족보다 빠르고 집요하게 목적을 달성한다”고 책에서 결론짓는다. 한국사회는 늘 덜컹덜컹하지만 문제가 드러나면 빠르게 피드백을 하며 문제를 해결해 왔다. 또한 10년 전 ‘88만원 세대’ 30대들 중 많은 숫자가 이제 기업과 정부에서 과장급까지 진급하며 실무의 중심에 올라왔다. 지역사회에도 자리를 지키는 젊은 활동가들이 생겨난다. 다른 감각의 다음 세대 주역들이 등장한다. 달라진 시대정신 속에서 새로운 세대 주체들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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