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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특별보고관, 인신매매법안에 우려 표명…“정부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

2021.03.19 10:37 입력 2021.03.19 16:14 수정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인권이사회의 특별보고관들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인신매매방지법안에 대해 “정부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이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자세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권고했다. 이 법안은 처벌조항이 없고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특별보고관 서한을 보면, 시오반 뮬랄리 인신매매 특별보고관과 오보카타 토모야 현대적 형태의 노예제 특별보고관은 지난 15일 한국 정부에 “(인신매매방지법안과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의) 일부 조항이 국제법에 따른 정부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는 우려를 표명한다”고 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신매매·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전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결돼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뒀다.

유엔 특별보고관들은 인신매매방지법안에 처벌조항이 없는 것에 대해 “귀 정부가 2015년 11월 비준한 유엔인신매매방지의정서 제3조가 정의한 인신매매에 해당되는 다양한 행위를 포함하지 못한 공백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의정서에서 요구하는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와 관련 범죄를 제재하기 위해 별도의 형사적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수진 의원,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등은 처벌 조항이 없어도 현행 형법과 출입국관리법, 성매매처벌법, 선원법, 근로기준법 등으로 인신매매를 처벌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법무부와 지방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외국인 체류심의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인은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도 체류심의위원회를 거쳐야 체류기간 연장이나 강제퇴거집행 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특별보고관들은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의무를 충족하지 못했다”며 “이 법안은 이주민 피해자를 강제 추방하거나 보호 명령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체류를 보장하지 않고, 자발적인 귀환을 담보하는 보호 장치도 없다. 피해자 보호 절차는 승인 절차를 추가해 더욱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특별보고관들은 한국 정부에 “언급된 정보에 대한 추가 정보나 의견을 제공해달라” “앞으로 인신매매방지법안과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국제 인권법적 체계에서 귀 정부의 의무와 규정들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달라” “인권 기구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취했거나 취하려는 조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권고했다.

특별보고관들은 인신매매방지법안이 ‘인신매매’가 아닌 ‘인신매매·착취’ 용어를 사용한 것에도 “혼란을 야기하고 잠재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형법이 처벌할 수 있는 인신매매와 별개의 행위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회 여성가족위는 전체회의에서 ‘인신매매·착취’를 ‘인신매매 등’이라는 용어로 수정했다.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 조항에 대해서는 “식별 절차와 관련한 규정이 없다”며 “국가는 인신매매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를 식별할 적극적인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 피해자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하면 피해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기 쉽다”고 밝혔다. 현재 이 법안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식별 지표를 개발해 고시하고 활용을 권고할 수 있다”는 규정밖에 없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현행 형법과 다른 법률 조항으로는 다양한 인신매매 유형을 모두 처벌할 수 없다”며 “특별보고관들도 이 법안이 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지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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