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대형마트, 상품 치우듯 노동자 구조조정

2021.04.20 21:20 입력 2021.04.20 22:57 수정

업체들 실적 부진에 잇단 폐점…노동자 전환배치 진행 중

노조 “책임 일방적 전가” 반발에 사측은 “고용 100% 보장”

대구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A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폐점 통보를 받았다. 지점이 없어지면 A씨를 비롯한 직원 모두가 새로운 지점에서 일해야 한다. 회사 요구대로 5지망까지 희망 이동 지점을 적어냈다. 멀게는 지금 일하는 곳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배치받을 수 있다. 일부 직원이 “너무 멀리는 못 간다. 1지망만 쓰겠다”고 하자 회사는 전환배치를 위한 면담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들 5지망까지 써 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40~50대 여성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며 “거리가 멀어지면 교통비 등이 더 들고 근무 여건이 안 좋아질 것이 뻔하다.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지점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20일 마트노조에 따르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대주주로 있는 홈플러스는 지난해 경기 안산점, 대전 둔산점·탄방점, 대구점을 매각한 데 이어 올해 부산 가야점과 대구 스타디움점의 폐점·매각을 발표했다. 탄방점은 지난 2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고, 다른 지점도 폐점 과정에 있다.

이들 6개 지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탄방점 80여명(폐점 전), 둔산점 130여명, 안산점 220여명, 가야점 220여명, 대구점 120여명, 스타디움점 70여명 등 총 840여명에 이른다. 모두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거나 이동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점 폐쇄가 지금 같은 속도로 계속되면 노동자를 전환배치할 곳도 더 이상 남지 않을 수 있다.

노조에 따르면 롯데마트도 지난해 경기 동두천·의정부·양주·서현·일산 빅킨텍스·마장휴게소, 서울 구로·빅도봉, 충남 천안·아산, 부산 금정, 대구 칠성 등 12개 매장을 폐점했고, 올해 10개 매장의 추가 폐점을 진행 중이다. 이마트는 최근 6년간 신규 매장을 390개나 늘리면서 인력 채용을 하지 않아 현장 노동 강도가 늘고 있다고 했다.

업체들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배송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폐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그런 점을 일부 인정한다고 해도 구조조정이 일방적이라고 반발한다. 마트 노동자 B씨는 “오프라인 매출이 줄었다고 하지만 온라인 매출을 생각하면 업계의 위기라는 말이 맞지 않다”며 “일부 매장 직원들이 온라인 물품 배송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 실제 매장 직원들의 노동력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조는 특히 MBK가 부동산 투기를 위해 악의적으로 사업을 철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주현 마트노조 서울본부 사무국장은 “2015년 사모펀드인 MBK는 마트 경영이 아닌 부동산 가치에 주목해 홈플러스를 인수했다”며 “탄방, 둔산, 안산, 대구점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알짜 매장이었다. 실적 부진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측은 “회사는 고용안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 탄방점 영업종료 이후에도 직원들은 모두 인근 점포로 전환배치돼 정상근무 중”이라며 “직원들의 점포 선택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5지망까지 늘려 의견을 받고 있다. 고용은 100% 보장할 것을 수차례 약속해 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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