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정글북 작가 키플링 타계

2010.01.17 18:09
서영찬 기자

아들도 창작도 가슴에 묻어버린 노년

소설 <정글북>의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이 1936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 영국인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왕실로부터 ‘계관 시인’ 칭호를 받은 키플링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어두웠다. 하나뿐인 아들 존의 죽음이 그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키플링은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글을 많이 썼다. 특히 인도와 버마 등 영국 점령지 군인의 영웅주의와 애국심을 높이 샀다. 키플링처럼 인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조지 오웰이 <루디야드 키플링>이라는 글에서 ‘인간 키플링’을 ‘배타적 제국주의자’로 규정하며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고 미학적으로 역겹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어제의 오늘]1936년 정글북 작가 키플링 타계

키플링은 10대 시절 군인을 흠모해 군사학교에 들어가려 했으나 심한 근시 탓에 꿈을 접어야 했다. 그의 애국주의는 아들에게 영향을 줬다. 아들 존은 16살 때 군대에 자원했다. 하지만 존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시력이 나빠 징병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키플링은 아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그의 명성을 이용해 정치인과 군 장성 등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다. 결국 존은 아버지의 뜻대로 군복을 입게 됐다.

존은 입대하자 곧바로 독일군과 연합군이 대치한 프랑스의 서부전선에 배치됐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이었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키플링은 어느날 영국 정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존이 전투에서 실종됐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전사 통보였다.

하지만 키플링은 아들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고위 관료 등 모든 채널을 동원해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려 노력했다. 키플링은 직접 서부전선을 수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무덤은커녕 아들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키플링은 1919년이 돼서야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창작열을 압도했는지 말년의 키플링은 이렇다 할 소설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를 기리거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주로 썼다. 키플링은 아들을 잃은 후 위장 장애를 달고 살았다. 결국 위궤양이 심해져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시인 T S 엘리엇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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