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흔드는 손 누구냐

2013.09.20 13:37 입력 2013.09.20 13:38 수정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발표 놓고 청와대와 대립각, 김기춘 등 검찰 선배 청와대 포진시켜 압박, 이석기 구속 다음날 채 총장 혼외 자식 의혹 보도. 야당은 “의혹 제기 시점이 하필 왜 이 지금이냐”며 국정원과 청와대를 배후로 의심하고 있다.

정가의 최근 화제는 단연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채 총장의 의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선 채 총장을 응원하는 소리까지 나온다. 여당과 보수언론은 검찰총장을 못마땅해하고, 야당이 오히려 총장을 감싸주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채 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은 단순한 개인의 사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 같지 않다. 여당과 야당,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이 연루된 복잡한 정치게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관심은 채 총장의 혼외자식 실제 여부보다도 왜 이 시점에 그런 의혹이 제기됐느냐에 더 쏠리고 있다.

여당, 꼬인 정국 ‘채동욱 검찰’ 탓

종편에 출연한 한 개그맨이 시사프로그램에서 “이석기 의원 구속으로 온 나라가 정신이 없는데, 바로 다음날 채동욱 총장의 혼외아들 파문이 터졌다”며 “우리나라 이슈들이 전부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느낌”이라고 말한 것이 인터넷에 회자됐다. ‘번호표’라는 말이 채 총장 의혹의 제기 시점에 대한 의혹을 정확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채동욱 총장이 연일 쇼설픽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혼외자식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채 총장 체제 ‘흔들기’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지난 6월 14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수사 발표가 ‘채 총장 흔들기 의혹’의 기승전결이 드러나는 분수령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수사 발표 내용을 놓고 검찰은 청와대·법무부와 각을 세웠다. 결국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정국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을 보도한 후인 9월 9일 채 총장이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을 보도한 후인 9월 9일 채 총장이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선거개입 결론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까지 문제 삼을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야당이 일제히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성토하고 나섰고,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NLL 회의록 발췌본을 공개하는 강수를 두었고, 정가에서는 NLL 회의록 공개와 국정원 국정조사로 시끄러워졌다. 야당은 결국 장외로 나갔다. 여권이 이 모든 것의 시발을 검찰의 국정원 수사 발표로 보고 그 최고책임자인 채 총장을 못마땅해하는 것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5일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채 총장 체제에 제대로 대응치 못한 민정라인을 경질하고, 채 총장보다 한참 윗 기수인 검찰 선배를 청와대에 포석함으로써 채 총장을 ‘압박하는’ 구도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석기 정국이 끝나자마자, 채 총장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런 채 총장에 대한 불편한 시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채 총장 흔들기 의혹’의 핵심이다.

이는 여당 한 관계자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인사는 “왜 검찰이 사사건건 박근혜 정부와 맞서려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현 상황을 답답해했다. 야당이 장외투쟁까지 하고 있는 대치정국의 모든 문제점이 채 총장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흔들기 의혹’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생각은 단호하다.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총장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흔들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흔들기 의혹으로 또 다른 권력기관과의 암투설, 청와대의 사전인지설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여의도 정가에 등장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9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채동욱 총장의 ‘혼외자식설’은 국정원이 배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 근거로 “개인 출입기록이나 가족관계등록부, 이런 모든 일련의 서류들은 본인 아니면 발급받을 수 없는 서류”라며 “이걸 가질 수 있을 만한 기관이 어디겠느냐. 국정원을 의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이 같은 의혹 제기에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대응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보도자료를 내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야당 쪽에서는 청와대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8월 청와대 인사 이후 잠잠했지만 이석기 공안정국과 채 총장 혼외자식 의혹 제기가 청와대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야당측 시각이다.

야당은 검찰총장 몰아내기로 판단

민주당은 2007년 대선 때 BBK사건 수사 이후 검찰을 줄곧 불신하며 각을 세워 왔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개입 발표 이후에도 수사 미진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채 총장 혼외자식 의혹’이 제기된 이후 채 총장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국회 법사위 야당 위원인 서영교 의원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혹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언론이 보도할 거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역임한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활동하면서 채 총장과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았고, 국회의원들 사이에도 명예를 중시한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난데없이 이런 (혼외자식) 의혹이 제기돼 사실 당황스러웠다”고 채 총장을 감쌌다.

채 총장은 명예를 중시하고, 후배 검사들이 많이 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사장 시절부터 자기 관리가 철저해 주변에서 스스로 ‘총장감’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고 한다. 채 총장에 대한 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을 중시한다’는 대목이다.

채 총장을 비롯해 채 총장 사람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인사들은 일만 한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채 총장 사람들은 사교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정치권 인사들과 그렇게 가깝지도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 내부의 알력설이 흘러나오는 것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채 총장 체제를 흔들고 있다면 그것은 검찰 내부가 아니라 외부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혼외자식 의혹이 한창 제기되고 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채 총장 체제는 지난 9월 10일 전두환씨 일가의 추징금 완납계획 발표로 개가를 올렸다. 1997년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어정쩡하게 남아 있던 미완의 환수작업을 16년 만에 깔끔하게 해치운 것이다.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와 전두환 일가 수사, 4대강 관련 수사 등에서 잇따라 개가를 올리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검찰에 정통한 한 인사는 “채 총장은 총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앞만 보고 가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치권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원칙을 밀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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