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세월호 생존자들,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다”

2014.06.08 16:51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51)가 7일 저녁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의 소식과 함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 박사는 얼마 전부터 안산 지역에 내려가 유가족, 생존 학생, 단원고 2학년 교사들을 상대로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정 박사는 이날 트위터에서 “안산과 진도는 여전히 지옥같은 고통과 슬픔으로 꽉 차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 캡처.

그는 “그간 개별적으로만 유족 부모님들을 만나다 며칠 전에는 유족 부모님들 전체와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며 “이야기를 나누며 저도 부모님들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부모님들이 우는 울음은 보통의 울음과는 많이 달랐다”면서 “울음이라기 보다는 흐느낌,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 흐느낌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마치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이 울고 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고 웁니다”라고 그는 부연했다. 그는 “우물 바닥처럼 깜깜한 눈물,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눈물을 그날 만났다”며 “저는 종교가 없지만 그날은 묵주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처음으로 간절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이어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그릇된 시선에 대한 경계와 당부의 말을 했다. 이를 위해 먼저 한 사례를 소개했다.

정 박사는 “얼마 전 유족 어머니 한 분이 동네 마트에서 평범한 표정으로 장을 보다가 ‘저 엄마는 계모인가봐’ 하는 수근거림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이 분은 바깥 출입도 못하고 집에서 혼자 울며 지낸다”고 전했다. 정 박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 시간씩 통제할 수 없이 울다가도 때가 되면 배도 고프고 개콘이라도 보게 되면 웃을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람이고 유족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편안한 표정의 유족도 혼자선 몇 시간씩 우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 앞에서 지금 울고 있는 유족도 다른 상황에선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란 걸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린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칼이 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무덤덤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 수록)가장 약한 사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받았을 때 가장 심약한 사람이 무의적으로 쓰는 심리방어기제가 바로 ‘감정 마비’”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당이 안돼서 셔터 내리듯 김정을 싹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분들이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친구 장례식에 가서 슬픈 표정 하나 짓지 않고 태연하게 있다가 친구의 외삼촌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던 생존 학생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정 박사는 “그 아이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지만 밤에 숙소에 들어가면 커튼도 못 열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생존 학생들의 치유에 악영향을 미치는 소문들에 대한 경계와 우려도 표명했다. 정 박사는 “생존 학생들은 새로 4개 반으로 나눠 지내고 있다”며 “그런데 이 아이들이 새 반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는 걸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친구를 새로 사귀면 마치 (죽은) 자기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 같이 느껴서”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 박사는 “친구가 삶의 거의 전부인 청소년기에 친한 친구들은 거의 죽었고, 새 친구 사귀는 것에는 무의식적 저항감을 가지는, 이 마음 여리고 착한 아이들… 지금 이 아이들은 자기 삶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그런데 ‘담배 피우러 갑판 나왔던 아이들이 살아나왔다더라, 산 아이들은 다 담배 피우는 아이다…’는 등의 근거없는 험한 얘기들에 아이들이 다시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된다. 살아야겠단 의지가 꺾인다. 사지에서 살아온 아이들을 다시 죽이는 이런 말들, 이젠 제발이지 멈춰야 한다”며 시민들의 주의와 배려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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