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무너질까

2014.09.15 20:52 입력 2014.09.15 21:08 수정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어느 모로 보나 집권세력의 책임이 큰 세월호 이슈가 야당을 위기로 몰아가는 현실은 가히 역설이다. 여당에 대해서는 위기는커녕 약화를 말하는 사람도 없다. 반면 야당은 리더십 차원뿐 아니라 도덕적 기반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유권자의 생활세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당 같은 당’은 새누리당뿐이라는 말을, 적지 않은 야당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다.

[정동칼럼]왜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무너질까

당 조직의 응집력이나 정책 역량에서 여당이 앞선다는 진단도 더는 새삼스럽지가 않다. 선거 때 야당 후보들이 신뢰하는 조사 자료 역시 여당의 여의도연구원에서 만든 것이지 자기 당 정책연구소 자료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다가 야당은 정치 엘리트 개개인이 활용하다 버리는 선거용 정당으로만 남을 뿐, 하나로 통합된 조직이자 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자칫 일본 자민당과 유사하게 새누리당 1당 우위체제가 고착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단순히 당 조직력이나 리더십의 안정성 나아가 사회적 지지 기반에서 여야 간 우열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여당 우위체제의 이면에 국가 중심의 단원주의적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을 지배하는 담론을 보더라도 민주주의보다는 국가주의에 가깝다. 갑작스럽게 “국가가 나서야 한다”거나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진 반면, 정치는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문제 그 자체이거나 최소한 그 원인이라는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강력하다. 국가나 대통령을 최후의 보루 내지 구원자로 호명하는 일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공공 영역을 지배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국가가 국민의 전체 의사를 구현할 윤리적 존재로 부각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에 과도한 목적 합리성이 부과될 때 파생되는 부정적 사회 심리도 만만찮다.

필자가 볼 때 대표적인 것이 유사 경찰국가적 양상이 아닌가 싶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못 참겠다며 경찰을 부르고, 자기 아이를 욕한 낙서를 누가 썼는지 찾아 처벌해 달라며 신고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범인 검거율을 보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범죄 발생을 줄이는 데 있음에도 검거와 처벌 중심의 여론이 압도적인 것은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응당 발전해야 할 자율적 시민사회의 역할이 공허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국민적 운동을 불러일으키려는 접근이 낳는 부작용도 생각해볼 일이다. 대규모 운동을 바랄수록 의사(擬似) 국민적 합의를 앞세우게 된다. 당연히 시민집단들 사이의 이견과 차이를 동반하는 민주정치의 역할과 충돌할 때가 많다. 그럴 경우 정치적 이견을 초월해 보편이익의 구현자로서 국가를 불러들이기 쉬운데,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주창되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라는 구호가 “국가(대통령)가 나서야 한다”로 퇴행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이론에서 국가의 전제성을 줄이는 접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국가권력을 분할해 상호 견제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 삼권분립이라고 부르지만, 어디까지나 그 핵심은 사법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둘째는 자율적 결사체를 활성화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자치 조직을 강화하고 기능 이익에 기반을 둔 집단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있다. 셋째는 정당 다원주의적 접근이다. 이는 사회의 다기한 이익과 열정을 정치적 대안으로 조직한 복수의 정당들이 상호 경쟁과 조정을 통해 공공 정책과 국가 관료제를 통제해 가는 것을 말한다.

세월호 사건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이 가운데 어떤 변화를 성취했는지를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군과 정보기관의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에서 보듯 국가권력은 더욱더 응집적으로 되고 있다. 노조 등 자율적 결사체의 성장과 활동은 공공연히 억제되는 반면 유사 관변단체들의 공세는 노골적이 되고 있다. 정당 다원주의는커녕 무익한 흥분과 적대를 동원하는 여야 간 양극화 정치만 심화되었다. 그사이 중앙의 국가 관료제와 행정 권력만 빠르게 강화되고 있을 뿐, 지역사회도 시민사회도 민주정치도 길을 잃은 것이 오늘의 상황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필자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기우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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