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석관동 아파트 주민과 경비노동자의 ‘따뜻한 상생’

2014.11.28 20:51 입력 2014.11.28 21:14 수정

지난달 초 입주민들의 폭언과 인격모독에 시달리던 서울 압구정동 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만수씨가 분신사망한 사건은 아파트 경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안타까운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인의 동료인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 78명 전원이 며칠 전 해고를 예고하는 통보장을 받은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이씨의 분신 등으로 아파트 명예가 훼손됐다”며 용역업체 선정 방법 변경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적 약자이자 늘 가까이 보아온 경비노동자들에게 이처럼 야박하게 굴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파트 인심’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질고 각박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 입주민들은 5년 전부터 냉장고 온도를 올리고 여름 두 달을 제외한 10개월 동안 에어컨 전기코드를 뽑는가 하면 취침·외출 시에는 인터넷 전원을 차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기료를 아껴 조성한 수억원으로 내년 경비노동자 임금을 19%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입주민들은 2011년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난 경비노동자를 해고할 때는 반드시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거치게 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비위에 조금만 거슬리면 해고해버리는 행태가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석관동 주민들의 선행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경비노동자들의 처우와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정작 자신들은 일상생활에서 적잖은 불편을 5년 가까이 감수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하겠다.

석관동 아파트 주민과 경비노동자들의 따뜻한 ‘더불어 살기’는 ‘동반성장’과 ‘상생’ 등의 구호만 난무할 뿐 실질적인 결과물은 낳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진정으로 너와 내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내’가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하며, ‘나’만 잘살려고 ‘너’를 억누르면 결국에는 ‘너’와 ‘내’가 모두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쪼록 석관동 아파트에서 지펴진 ‘더불어 살기’의 소중한 불씨가 전국의 모든 아파트를 넘어 사회 전반에 널리 번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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