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저격수’가 이학수법을 우려하는 이유

2015.02.24 20:56 입력 2015.02.24 21:13 수정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박영선 의원이 삼성SDS 상장에 따른 천문학적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해 이른바 이학수법을 대표발의했다. 그런데 나는 이 법안에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다. 내 별명이 삼성저격수임을 감안하면 의외라 느낄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다.

[김상조의 경제시평]‘삼성저격수’가 이학수법을 우려하는 이유

첫째, 확정판결이 난 삼성SDS 사건을 다시 형사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중처벌 및 소급입법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 난점을 넘어서기 위해 이학수법은 ‘민사적 몰수’(civil forfeiture)라는 영연방 국가들의 관습법 개념을 도입했다. 범죄를 수지맞는 비즈니스로 방치하는 것은 공동체의 존속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 문제는, 엄격한 증거주의에 입각한 형사 절차로는 범죄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물건을 피고로 세우고, 민사소송 절차에 따라 상당한 개연성만 입증되면 범죄와 관련된 직간접적 수익을 모두 환수하는 것이 민사적 몰수다.

법치주의 전통을 쌓은 이들 나라에서 헌법적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법리를 발전시켰다는 것이 놀랍다. 그 비밀은, 민사적 몰수가 애초 마약·매춘·밀수·테러 등의 조직범죄(organized crime)에 대한 대응 수단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수괴는 놔두고 조무래기만 감옥에 보내기보다는 범죄조직의 경제기반을 허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취지다. 1980년대 이후 국제기구 차원에서 마약·돈세탁 방지를 위한 조약 체결을 추진하고, 2001년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 민사적 몰수 입법을 확산시킨 배경이 되었다. 1996년 아일랜드, 2002년 영국과 호주, 2009년 뉴질랜드 등이 대표적 예다.

그럼 재벌 총수일가의 배임·횡령 범죄에 민사적 몰수를 적용할 수 있는가. 직관적으로는 그렇다. 뻑 하면 검찰에 불려가고, 그것도 대를 이어 불려가니, 상습적 범죄조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민사적 몰수의 적용대상은 입법정책의 문제로, 국회의 판단에 따라 조직범죄 이외의 재산범죄로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재벌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그 수법이 조폭이나 테러단체만큼 복잡하고 은밀해서가 아니다. 기획자와 수혜자를 다 안다. 다만, 검찰·법원이 기득권에 포획되었고 충실의무 위반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제도가 허술했기 때문에 알고도 못 잡은 것뿐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런데 이학수법은 너무나 논쟁적이기 때문에 자칫 우선적 과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묻히고 지체될 위험이 크다.

둘째, 이학수법은 악의의 수혜자인 이재용 부회장 남매에게로 확대적용될 여지를 열어두었다. 삼성SDS 건을 8번 고소·고발한 경제개혁연대의 책임자로서 그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삼성SDS(유죄)는 되고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무죄)은 안되는 구조는 솔직히 어색하기만 하다. 더구나 민사적 몰수를 위한 소송제기 여부를 법무부 장관의 재량적 또는 자의적 판단에 맡겨야 하는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민사적 몰수의 전제가 되는 관습법적 전통 및 관련 법률 인프라가 불비한 우리에게 이런 어색함은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로, 이학수법은 과잉집행되거나 과소집행될 양 극단의 위험을 안고 있다. 작년에 EU가 대륙법적 전통을 발전시킨 범죄수익환수 지침을 제정했는데, 민사적 몰수의 명시적 도입 없이 형사적 몰수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혁신에 주력했던 것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셋째, 나는 이학수법이 진보진영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로 본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연달아 패한 것이 선명성 부족 때문은 아니다.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학수법은 강력한 대중적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깊숙한 곳의 불신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내가 이학수법에 우려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역사에 남을 대참사도 따지고 보면 선의로 시작한 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카이사르가 말했다. 이학수법 논의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학수법은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너무 크다. 선의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과거를 잊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삼성의 3세 승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인해야 할 우리의 과제는 많이 남았다. “재벌개혁은 재벌 거듭나기”라는 고(故) 김기원 교수의 말을 실천할 건설적 토론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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