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가 있긴 한가

2015.07.10 21:52 입력 2015.07.10 22:01 수정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칼럼]대중가요가 있긴 한가

돌아온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신곡 ‘파티’는 음원차트에서 지난 8일 딱 하루 1위를 차지하더니 다음날 신예 힙합 뮤지션 ‘크러시’의 곡 ‘오아시스’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국가대표 격인 존재감에다 컴백 특수를 전제하면 정상 점령기가 너무 짧은 것 같지만 근래 음원차트 현실을 보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1일천하가 비일비재해서 이제는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샤이니 종현의 ‘데자뷰’, 에릭남의 ‘괜찮아 괜찮아’, 빈지노의 ‘어쩌라구’, 레드 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 이문세의 ‘봄바람’, 지누션의 ‘한 번 더 말해줘’ 등 상반기 상당수의 히트곡이 하루살이 1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지나치게 짧은 유행 절기는 ‘멜론’ ‘지니’ ‘엠넷’ 등 디지털 음원차트가 정착한 수년 전부터 일상다반사가 돼버렸다.

서태지의 지난해 ‘소격동’도 수년 만의 컴백 작품인 데다 톱스타 아이유의 보컬 지원사격을 받았음에도 하루 1위의 프레임을 깨지 못했다. 실시간 차트로 따지면 하루도 아닌 반나절 1위였다. 1992년 데뷔 이래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상찬을 받으며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던 왕년의 무소불위 파워를 떠올리면 성과가 조금은 초라하다.

물론 주간 음원차트나 ‘음악중심’과 ‘엠카운트다운’ 등 방송 차트를 보면 2주, 3주 넘버원 노래가 없지는 않다. 일각에서는 이게 더 인기 동향을 잘 반영한다고 하지만 인기 지속 기간이 비약적으로 줄다보니 어떤 한 노래가 대중적으로 히트했다는 것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하루 1위에 오른 곡을 크게 인기를 얻는다는 의미의 히트로 직결시키기는 곤란하다.

MBC 라디오국의 한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한다. “‘빅뱅’의 ‘뱅뱅뱅’처럼 히트곡은 지금도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과연 그 곡들이 대중적 히트곡일까요. 옛날 히트곡은 여러 세대와 계층이 아는 소위 전 국민 히트송이었죠. 지금은 특정 세대와 집단 사이의, 그들만의 히트곡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노래를 대중(大衆)가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중(小衆)가요 아닌가요.”

과거를 들먹이면 가슴 아픈 얘기지만 15년 전, 2000년대가 막 시작된 때와 비교하면 우리의 음악시장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고 신해철은 솔로와 밴드 ‘넥스트’로 승승장구하다 1999년 <모노크롬> 앨범을 내면서 최초의 쓰라린 실패를 맛본다. 실패란 이전에 비해 음반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생전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이에 대한 본인의 소회가 재미있다.

“<모노크롬>이 내 최초로 상업적인 실패를 한 음반인데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요? 그 음반이 처절하게 패해서 박살이 났는데, 그게 몇 장이냐면 17만장이야. 지금과 비교해봐요.” 17만장 판매라면 지금은 초대형 대박이다. 밴드 크라잉넛이 2006년 발표한 통산 5집 <OK목장의 젖소> 앨범은 판매량 1만장을 기록했다. 제작자는 호응에 기쁜 나머지 ‘크라잉넛 5집 1만장 돌파!!!’를 큼지막하게 새긴 기념수건을 만들어 관계자들에게 돌렸다. 그 무렵에는 1만장도 성공이었던 셈이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이용 미디어가 막 전환될 시기에는 기존 4000억원 음악시장이 1조원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시장이 확대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음원시장으로 바뀌고 나서 오히려 체감지수는 나날이 하락하는 듯한 양상이다. 반짝 하루 1위에 오른 곡이 많다는 것은 음악계의 무한경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실은 음악시장의 대폭 축소 상황과 관련이 있다.

어떤 제작자는 “과연 음악시장이 있기는 한 건가”라고 의문을 표한다. 음악을 듣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고 하는데 왜 이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걸까. 실제 그래프와 통계수치는 높게 나올지 몰라도 분위기는 다들 ‘그로기 상태’다. K팝이 글로벌시장에서 승전보를 날리고 있는데 정작 내수시장은 힘이 달려 허덕댄다. 대중이 참여하고 공유하는 음악, 그 대중음악은 이제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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