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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소방관 옷 개선에 예산 ‘꼼수’ 부린 국민안전처···결국 한 해 또 연기

2016.06.08 05:30

국민안전처가 시급한 소방복 개선사업을 위해 8000만원 가량의 소방공제회 예산을 전용하려다가 들통이 나자 이를 취소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때문에 소방관들의 구조·구급 안전을 위해 필요한 소방복 개선 사업은 한 해 연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국민안전처는 장관 업무추진비로는 매년 2억여원씩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예산 떠넘기기에 더해 소방관들의 안전만 저해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부산경찰청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해 부산경찰청 페이스북 갈무리

■소방관 복제 개선사업 몇년째 ‘헛바퀴’

소방관들이 입는 복제는 여러가지다. 방화복을 제외하고 방화복 안에 입는 기동복과 근무복, 훈련복 등이 있다.

문제는 일선 소방관들이 대부분 이런 옷들에 대해 수년째 불편함을 토로해왔다는 점이다. 다른 공무원과 달리 세월호 참사나 경주 마우나 리조트 참사 등 위험한 구급·구조에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들로서는 복제의 불편함이 곧 자신이나 사고 피해자 등의 생명의 위협으로 연결될 수 있어 시급한 개선을 요구해 온 것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예산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개선 작업을 차일 피일 미뤄온 측면이 있었다.

2013년부터는 국회까지 나서서 복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소방방재청이 현장 소방관 설문조사 결과를 무시한 채 기동복을 교체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소방관들이 출동 대기 중에 입고 있는 기동복이 불편하다는 반응이 나와 160억원을 들여 교체했는데 그마저도 소방관들의 의견과 맞지 않게 바꿔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정 의원은 “소방관 3만여 명의 설문 결과 83%가 ‘기능성 옷’을 선택했음에도 17%가 응답한 ‘안전성 옷’을 채택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일선 소방관들 사이에선 “두껍고 뻣뻣한 신형 기동복을 입고 그 위에 또 방화복을 입으면 땀 흡수도 안되고, 움직이기도 어려워 구조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도 2014년 국회 소방방재청 대상 국정감사에서 기동복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이 의원은 “당초 기동복은 화염과 열에 매우 취약한 폴리에스테르 재질로 되어 있어 화재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열과 화염에 강한 옷으로 개선되긴 했지만, 반면 개선된 옷이 타면서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은 허점을 남기기도 했다. 개선된 기동복이 타면서 나오는 가스는 ‘시안화가스’로 세계 2차대전에서 독일이 유대인 대량학살에 사용한 독가스라고 알려졌다.

결국 구조·구급 활동을 전담하는 소방관들의 복제가 오히려 그들의 활동에 발목을 잡고 있는다는 지적들이 사그라들지 않아 왔던 셈이다.

2014년 10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소방방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일선 소방관들에게 지급된 소방 기동복이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 져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br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014년 10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소방방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일선 소방관들에게 지급된 소방 기동복이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 져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개선사업 나선 국민안전처의 ‘꼼수’

지난해 국감에서도 정 의원 등 여야 의원의 성토가 이어지자 국민안전처는 복제 개선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초 드디어 복제 개선사업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또 불거졌다. 국민안전처가 실태조사에 대한 연구용역을 하기 위해 자기 예산이 아니라 다른 단체의 돈을 쓰려고 시도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이 7일 국민안전처의 ‘소방공무원 복제개선 연구용역 추진현황’을 받아 검토한 결과, 안전처는 예산 8000만원 짜리 소방복제 개선 실태조사 용역을 소방공제회 자체 예산을 전용해 집행하려 한 사실이 밝혀졌다. 안전처 측은 당초 지난해부터 관련 예산이 책정돼 있지 않았던 점을 이유로 든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처는 올해 1월 ‘2016년도 소방공무원 복제개선 기본방향’을 장관에게 보고했고, 이후 3월부터 소방복제 개선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소방관의 복제 개선사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정작 연구용역 사업예산 등은 확보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안전처는 소방공제회 예산으로 전용을 시도했다. 소방공제회 예산 사용 명목 중 ‘소방공무원 공제제도 운영 및 공사상 소방공무원에 대한 지원사업’이라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소방공제회는 지난 4월18일 서울지방조달청에 연구용역 입찰공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지난달 말 “소방공제회 예산으로 소방공무원 복제개선 연구용역비 집행은 잘못된 사안”이라며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안전처는 태도를 바꿨다.

안전처는 그제서야 연구용역 발주를 취소했다. 이어 “해당 예산을 당초 목적대로 소방공제회가 소방공무원 복지관련 실태조사 연구용역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 공제회 예산 사용을 부적절한 전용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방복 개선사업은 ‘올해는 물 건너 가버렸다’. 안전처는 “내년도 본예산에 편성하겠다”고 밝히면서 ‘소방공무원 복지증진사업’ 명목으로 1억6000만원을 편성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했다. 결국 올해 초부터 진행해오던 사업이 ‘예산 핑퐁 게임’으로 인해 내년으로 밀리게 된 것이다.

[단독] 시급한 소방관 옷 개선에 예산 ‘꼼수’ 부린 국민안전처···결국 한 해 또 연기

■돈 없다던 국민안전처, 장관 업무추진비는 매년 2억여원 넘게 사용

안전처의 ‘예산 부족 탓’도 사실이 아니었다.

‘2014년~2016년 안전처 장관의 업무추진비 현황’을 검토한 결과 안전처는 장관 업무추진비로 매년 2억여 원 이상을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000만원 짜리 예산에 투입할 돈은 없고 장관의 업무추진비는 계속 써 온 것이다.

이 의원은 “연간 2억원이 넘는 장관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안전처가 소방공무원 복지실태를 조사해야 할 소방공제회의 연구용역비를 빼앗으려 한 것은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재산권과 생명권을 침해한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도 예산에 편성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안전처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소방관의 안전을 책임질 복제개선 사업이 1년 이상 연기됐다. 소방관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무능한 장관의 책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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