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변명·남 탓은 있되 비전은 없다

2016.08.15 21:08 입력 2016.08.15 21:09 수정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광복 71돌을 맞아 경축사를 하면서 “한·일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대북 제안은 없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국내 정치세력과 노조를 비판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국내 비판세력에 대해서만 날을 세운 것이다. 시민들의 인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문장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평화헌법 개정을 당연시할 만큼 우경화로 치닫는 상황인데도 미래지향만 외쳤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 2013년 3·1절 경축사와도 배치된다.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일본)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점을 주목한다”는 지난해 입장과도 다르다. 더구나 정부의 일방적인 일본과의 합의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일관성 없는 대일 메시지로 과연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견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박 대통령은 또 1948년을 건국으로 보는 우파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지지했다.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에 나선 선열들에 대한 폄훼다. 국민 통합을 위해 헌신해야 할 대통령이 정통성 논쟁에서 한쪽 편에 서 분열을 조장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박 대통령의 국내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 비판 세력에 대한 태도다. 박 대통령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면서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떼법 문화의 만연,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 등의 용어를 써가며 이들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불평등 사회에서 취업난 등으로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현실을 비판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조차 사회 혼란을 부추긴다는 인식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자신의 실정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의도적인 트집 잡기와 분열 조장으로 몰면서 과거 개발독재 시대 경제개발과 같은 정책만 되풀이하는 창의력 빈곤이 딱하다.

창의적인 대북 제안 없이 ‘북핵 불용’만 되풀이한 점도 실망스럽다. 비핵화라는 대북 목표를 감안해도 이산가족 상봉 제안조차 제외한 것은 인도주의 접근을 계속하겠다던 정부의 자기 부정이자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포기나 마찬가지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하지 않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다른 방안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광복절 축사는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정세에 대한 비전과 메시지를 던지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모든 시민과 주변국이 주목하는 이런 자리에서 어제처럼 대통령이 자기변명과 반대진영에 대한 비판으로 축사를 장식한 사례는 없었다. 시민들이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면할 길이 없는 이 유감스러운 경축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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