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기름유출 10년 “모두 쉬쉬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7.12.30 18:06
이하늬 기자


여름이면 파도에 타르 밀려와…“주민 건강은 서서히 악화”


7월 5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 온 타르 덩어리들.  / 전상수 제공

7월 5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 온 타르 덩어리들. / 전상수 제공

“이게 신문에 나봐라. 테레비 나봐라.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은 경기, 그냥 죽는다.” 말을 아끼던 식당 주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거짓말 같으면 동네 돌아다니면서 물어봐라. 다 비슷하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월 27일과 28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를 찾았다.

모항리는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마을이다. 모항리는 모항 1구부터 4구까지 총 4개 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사고 당시 자원봉사의 상징이 된 만리포 해수욕장이 모항 3구다. 사고는 만리포에서 10㎞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만리포 해안을 따라 쭉 걸어가면 모항항이다.

12월 7일은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언론에는 “태안 10년, 123만의 기적” “태안 기름유출 10년, 다시 찾은 청정바다”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관광객이나 지역 해산물을 생각하면 반가운 기사다. 하지만 한편에는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있다. 환경과 건강 때문이다.

모항항에서 만난 홍재표씨(49)는 “아직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는 모항리에서 나고 자랐다. 자연스럽게 바다가 생활 터전이 됐다. 15년 전, 34살의 홍씨는 형과 함께 만리포 인근 무인 섬 주변 바다를 사 자연산 전복과 해삼 양식을 시작했다. 형제는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었다.

태안 바다는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전복이나 해삼은 해수면 아래 바위에 붙은 미역이나 다시마를 먹고 자란다. 홍씨는 “사고 전에는 다시마와 미역이 어마어마하게 자랐다”며 “전복 종패(씨를 받으려고 기르는 조개)를 뿌리고 3년이 지나면 세 배로 거둬들이곤 했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10년이 지났다. 만리포 해수욕장이나 모항항 바다에서 기름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홍씨는 “바닷속은 다르다”며 “미역이나 다시마가 바위에 붙어야 하는데 기름 성분 때문에 붙지를 않는다. 먹을 게 없는데 전복이 뭐 먹고 크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종패를 넣어도 상당수가 죽어버린다고 덧붙였다.

12월 28일 충남 태안군 모항항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우철훈 선임기자

12월 28일 충남 태안군 모항항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우철훈 선임기자

기름 흔적은 없지만 “바닷속은 다르다”
수협판매사업소에서 중매 일을 하는 한 주민도 더딘 회복을 실감한다. 그는 “해산물을 사서 소매로 팔아야 하는데 양 자체가 안 나온다”며 “기후변화 등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먹이사슬이 망가져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어민들에게 생태계 복원은 곧 생계 문제로 이어진다.

이들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또 있다. 홍씨는 매년 여름이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정비사업을 한다. 포클레인으로 자갈을 걷어내 백사장을 고르게 하는 작업이다. 지난 2017년 여름, 홍씨는 포클레인으로 자갈을 걷어내다가 ‘시커먼 무언가’를 발견했다. 포클레인에서 내려 땅 속을 살폈다. 타르였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전상수씨(53)도 “다들 쉬쉬하지만 여름마다 자잘한 타르 덩어리들이 파도에 밀려 들어온다”고 말했다. 수온이 높아지면 바다 깊은 곳에 굳어 있던 타르 덩어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전씨와 홍씨는 이를 모두 사진으로 찍어놓았다.

지난여름 타르가 나온 곳은 만리포뿐만이 아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25㎞가량 떨어진 연포 해수욕장에서도 타르가 발견됐다. 태안군청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쓰레기 등이 떠밀려 온다”며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서 밀려 온 쓰레기와 기름 찌꺼기를 모두 제거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 타르가 사고 당시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태안군청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연포 해수욕장에서 발견된 타르에 대해 “분석 결과 사고 당시 타르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유류오염연구센터도 사고 직후 태안지역 전체 해안의 69.2%에 달하던 잔존 유징이 2014년 0%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 생각은 다르다. 주민들은 2007년 사고 이전에는 타르가 해안으로, 그것도 매년 밀려오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만리포에서 숙박업을 하는 한 주민은 “정부 발표는 믿을 수 없다”며 “해양수산부는 맨날 다 잘 되고 다 좋다고 한다. 외국기관이 조사를 하면 믿겠다”고 말했다.

실제 폐유 수거실적을 보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8년 10월 10일 기준으로 해상과 육상에서 수거된 폐유는 4175㎘에 불과하다. 사고 당시 유출된 기름은 1만2547㎘다. 즉 33%만이 직접 수거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기름이 묻은 흡착 폐기물은 3만2074톤이었다.

이를 두고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안 기름유출 환경참사 10주기’ 토론회에 참석한 김형근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폐기물에 붙은 기름이 많을 것임을 유추하는 데서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10년 동안 모니터링을 했다고 하는데 연구 결과가 주민들 증언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구원과 주민들이 팀을 이뤄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11일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온 타르 덩어리들.  / 홍재표 제공

7월 11일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밀려온 타르 덩어리들. / 홍재표 제공

회복되는 생태계, 하지만 악화되는 건강
또 다른 문제는 건강이다. 생태계는 느리지만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사고 당시 주민들은 방제에 앞장섰다. 초기에는 방제복이나 마스크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지도 몰랐다. 빨리 퍼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주민들은 양동이와 삽, 마대자루를 들고 기름을 쓸어 담았다.

김관섭씨(59)도 3개월 동안 방제작업을 했다.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김씨는 “당시 현장에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혈압을 쟀더니 2008년 1월에 150이 나와서 놀랐다. 그런데 2월에는 180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 김씨의 혈압은 최대치가 120 정도였다. 가족 중 고혈압은 없다.

동시에 ‘목에 가시가 박힌’ 느낌이 이어졌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몇 개월을 지냈다. 얼마 뒤에는 치아 사이사이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염증에서는 고름이 나왔다. 치아가 하나 둘 빠졌다. 그리고 2008년 4월 27일, 얼굴 근육이 이상했다. 병원에서 안면마비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방제작업과 자신의 건강에 연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2010년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건강과 관련된 유일한 소송이다. 방제작업 외에 집히는 게 없었다. 실제 원유에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등이 포함돼 있다. 벤젠과 톨루엔은 1급 발암물질이다.

김씨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모르겠지만 유독가스를 흡입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여러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엑슨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를 연구한 미국의 해양독성학자 리키 오트는 PAHs가 몸이 쌓이면 면역체계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암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건 김씨 한 명이지만 아픈 건 김씨만이 아니다. 태안환경보건센터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전립선암이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났다. 애초 인구 10만명당 10~12명 수준이었던 발생률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30명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여성은 백혈병이 두드러졌다. 10만명당 5명 수준이었던 백혈병은 2009년부터 2013년에는 8.6명으로 뛰었다. 같은 시기 전국 평균은 4.1명이다. PAHs 대사체도 방제작업에 오래 참여한 사람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DNA 산화손상지표인 8-OHdG 또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명숙 태안군청 태안환경보건센터 연구팀장은 “암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노출에서 암 발생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20년 정도 걸리므로 현재 태안지역 주민의 암 발생률이 기름유출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긴 추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린이의 경우 사고 발생 1.5년 후 조사 결과, 사고지점으로부터 거주지까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천식의 위험도가 2.43배 높았다. 사고 발생 3년 후 사고지점과 거주지, 학교와의 거리가 가까운 초등학생에게서 천식 증상이 더 높았는데, 천식 유병률은 전국의 2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씨의 아이가 이런 케이스다. 전씨의 딸은 2007년 4월에 태어났다. 그는 “당시에 만리포 해수욕장 바로 앞에서 가게를 했다. 집도 거기 있었다”며 “지금 애가 초등학생인데 비염과 천식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씩 병원에 간다”고 언성을 높였다. 사고 전후로 태어난 아이들은 ‘기름둥이’로 불린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조차도 특정 질병에 국한돼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유해물질을 흡입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증상은 다르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가령 홍명순씨(66) 자매는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여덟 자매 중에 태안에 사는 두 자매에게만 일어난 일이다.

홍씨는 “2008년 이전까지 40년 가까이 생리주기가 일정했다”며 “방제작업을 시작한 다음달부터 생리가 끊겼다. 그 다음달에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혹이 자궁 안팎으로 퍼졌다며 곧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008년 4월의 일이다. 홍씨가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

주민간 갈등으로 심리적 고충도
심리적인 고충 역시 심각하다. 2008년 충남 천안 나사렛대 심재권 교수가 2008년 실시한 ‘태안 기름유출지역의 주민 의식 및 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리포와 모항항 주민 200명 중 72.3%가 기름유출사고 이후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후 태안군에서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발전기금 배분을 두고 주민들 간 갈등이 심해져 심리적인 고충도 심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홍씨는 “제일 안타까운 게 제 몸보다 동네가 이상해진 것”이라며 “지금 다들 적 아닌 적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만리포 해수욕장과 모항항 근처에는 ‘삼성발전기금은 피해민의 눈물이다. 허베이 조합은 삼성발전기금에 관여하지 마라’ ‘삼성발전기금에 눈 먼 태안 유류피해민대책총연합회는 즉각 해산하라’는 글자가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정부는 “상황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헤버이 스피리트 피해지원단 관계자는 “12만7000건에 달하던 소송의 99.8%가 해결됐고 남은 건 0.2% 수준”이라며 “이 소송이 모두 해결되고 나면 ‘보상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이뤄지고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태안군청 태안건강보건센터는 남성의 전립선암과 여성의 백혈병과 관련해 건강검진 독려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민들은 서운함을 보였다. 전씨는 “정부는 배상과 보상만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건강과 관련해서도 전립선암이랑 백혈병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마치 배상과 보상 문제만 끝나면 태안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프고 공동체는 갈라졌다. 이게 정말 해결된 건가”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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