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 “방조한 나도 공범…문단 해체돼야”

2018.03.06 21:44 입력 2018.03.06 21:46 수정

‘하이픈’ 봄호 특집에서 쏟아진 문단 내 성폭력·문학지 권력 등 자성론

국회 토론회서 김명인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해법”

문학과 사상서 정과리 “문단이 변화를 준비 못했다”

평론가들 “방조한 나도 공범…문단 해체돼야”

“지금 문단은 해체되어야 한다.”

2016년 말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이 일어나고, 최근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문단 안팎에서 ‘문단 해체’라는 말이 나온다. 문단의 한 구성원인 문학평론가들은 최근 문예지를 통해 “한국 문학의 위기”를 진단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학과지성사가 발행하는 문예지 ‘문학과사회’의 별권인 ‘하이픈’ 2018년 봄호는 ‘2000년대 이후의 비평’에 관한 특집을 마련하면서 문학평론가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공통 질문으로 ‘신경숙 표절 사건, 문학잡지의 혁신에 대한 요구와 응답, 문단 내 성폭력 사건 등 문단 안팎의 요구에 대한 비평적 과제’를 물었다.

김영찬 평론가는 “오랫동안 의심할 수 없는 권위로 받아들여졌던 것들의 탈신성화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최근 터져 나온 온갖 성적 추문과 폭로는 한국문학계 역시 정결하고 고고한 성채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남성 중심적 위계와 폭력에 오염되어 있었음을 극적으로 확인시켜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빌미로 한 한국문학 전체에 대한 대중의 조롱과 질타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문학성에 대한 어떤 권위가 혹여 일부라도 내부에서 곪아가는 성적 위계와 착취를 은폐하면서 그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라면, 그 권위는 마땅히 해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중요한 것은) 기존의 문학과 문학성에 대한 관념을 반성하고 재조정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했다.

김형중 평론가는 “나 또한 골수 깊은 데서 여전히 가부장적이었다는 반성, 읽고 쓰면서 젠더에 대해 깊은 자의식이 없었다는 반성, 표절 문제에 대한 섬세하고도 정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었다는 반성 같은 것들. 그 반성들을 글쓰기에 반영하는 일은 내게 주어진 일종의 윤리적 숙제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글을 쓰는 우리 모두가 문단에 대해서 구성적이어서 만약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면 그 변화의 대상에는 ‘나’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신형철 평론가는 “10년 남짓 활동해온 어떤 장에서 그간 누적된 것이 분출한 현상이기 때문에 나는 이 장에 ‘안주’해온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구조가 폭력적일 때 그 구조의 구성원으로서 살아온 사람은 아무리 축소해 말해도 결국 ‘구조적 가해자’일 뿐이라는 점을 자인하는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영현 평론가는 이 질문과 별개로 “표절 논란에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주변부적 정체성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꽤 많은 비평가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런 의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바깥에서 본 문학 혹은 비평의 위상에 골몰하느라(중략) 문학장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적거나 없다고 생각해왔다는 사실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3월호)에서 정과리 평론가는 “2016년에 발발해서 올해로 3년째로 접어든 성폭력·추행의 폭로와 고발이라는 사태”를 언급하며 “세상의 변화 속에서 필경 도래할 것이었는데, 한국문학의 전문 종사자들은 그런 사태를 예감하지 못했고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김명인 평론가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문단 내 성폭력과 갑질 청산을 위한 토론회’자리에서 “한국 문단이 정체를 넘어 어떤 위기 상태에 도달해 있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고백하거니와 나도 (술자리 등) 그런 자리가 내심 매우 불편하면서도 그 자리의 가해자들을 한번도 제대로 제재하지 못했고 소극적인 문제제기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면서 “결국 나도 공범이거나 최소한 방조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의 기득권 제도이자 비즈니스의 세계가 되어 각종의 미시권력 관계가 가로세로 얽혀 있는 현재 한국 문단의 기본 구조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은 언제든지 재발하게 되어 있다”며 “각종 인맥과 서열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미시권력들이 다른 사회집단과 다를 바 없이 촘촘히 존재하면서 ‘자율성’의 이름으로 은폐되거나 보호받은 문단은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위계도 차별도 발 들여놓을 수 없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문인 작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가 됐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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