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미투 폭로’ 했다가 보복성 고소를 당하면…

2018.04.04 15:44 입력 2018.04.04 22:30 수정

피해 내용 순서대로 정리한 일람표 작성해 ‘진실성’ 입증하고

다른 성폭력 관련 논문·기사 등 자료 준비해 ‘공공성’ 밝혀야

2015년 ㄱ씨는 4년간 당했던 데이트폭력 피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했다. 그러자 가해자는 1주일 후 ㄱ씨의 글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가해자는 이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4건의 민형사 고소도 했다.

가해자는 SNS에서 ㄱ씨의 글을 공유하고 응원한 누리꾼들에게도 200여건의 고소를 했다. 가해자는 ㄱ씨를 형사고소한 사실을 SNS상에 알리며 ㄱ씨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ㄱ씨가 이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자마자 가해자는 명예훼손으로 추가 고소했다. 그사이 ‘사실 ㄱ씨가 잘못한 것 아니냐’는 식의 2차 가해성 글들은 점점 심해졌다. ㄱ씨는 공황발작에 빠졌다.

ㄱ씨처럼 ‘미투(#MeToo)’를 외친 성폭력 피해자 상당수가 가해자들로부터 보복성 고소를 당하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 시달리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수사·재판에 임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무고함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을 마무리짓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맞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4일 경향신문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투쟁을 돕는 트위터 계정 ‘마녀(@C_F_diablesse)’가 정리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보복성 고소 대응 매뉴얼’을 입수해 본 결과 성폭력 폭로 이후 피해자들이 당하는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등의 보복성 고소에 대해 무혐의나 무죄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폭로가 ‘진실한 피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일단 폭로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받고 나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벗을 가능성이 높다고 매뉴얼은 소개했다.

매뉴얼은 성폭력 피해 내용 일람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피해 내용을 ‘시간, 장소, 사실관계, 당시의 주관적인 감정, 관련자료’ 등의 순서로 정리해 폭로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ㄱ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상황의 순서를 뒤바꿔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사기관에서는 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서 “일람표가 피해 사실을 객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ㄱ씨는 ‘물증이 부족하고 진술이 두서없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지만 이후 검찰에서 일람표를 제출해 폭로의 진실성을 인정받았다.

또 매뉴얼은 폭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보이려면 자신의 폭로와 관련된 기사뿐만 아니라 성폭력 관련 기사, 논문 등의 자료를 준비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수사 담당자에게 성폭력·데이트폭력 등에 대한 피해 폭로·논의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ㄱ씨 역시 데이트폭력에 대한 정의와 그 피해 등을 다룬 논문을 검찰에 다수 제출했다. 검찰은 ㄱ씨에 대한 불기소 사유서에서 데이트폭력의 정의에 대해 논한 뒤 이에 대한 피해 폭로 글이 여론 형성과 공개 토론에 기여해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결국 ㄱ씨는 2016년 가을 고소를 당한 지 1년여 만에 폭로의 진실성과 공공성을 인정받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고소건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어 나머지 고소건도 전부 무혐의, 불기소로 마무리됐다. ㄱ씨는 “내가 입은 피해가 나를 집어삼키는 악몽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다른 피해자들도 보복성 고소에 당황하지 말고 정확하게 법적으로 대처한다면 무고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