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영의 궁금하니까

수컷, 놀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용지물

2014.10.24 21:03 입력 2014.10.27 11:37 수정
노승영 | 번역가

▲ 성의 자연사…애드리언 포사이스 | 양문

[노승영의 궁금하니까]수컷, 놀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용지물

사회에서 남성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남자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 불만이라면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는 계통생물학자 애드리언 포사이스의 <성의 자연사>를 읽어보라. 불만이 감사로 바뀔 것이다.

한때 생물학자들은 따개비가 암수한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윈이 따개비의 분류를 연구하다가 수컷이 아주 작아져 마치 기생충처럼 암컷의 몸속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컷의 몸은 생식기관만 남고 대부분 퇴화했다. 인간이 따개비라면 남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귀 수컷은 생김새가 암컷과 전혀 달라서 다른 종으로 분류된 적도 있다. 암컷은 먹잇감을 유인하는 미끼가 크게 발달하지만 수컷은 코와 특수 이빨이 비상하게 발달한다.

수컷의 목표는 암컷을 찾아 달라붙는 것이다. 수컷은 암컷에게 이빨을 박고 아예 한몸이 되며 수컷의 주둥이는 더는 먹이를 먹는 역할을 하지 않고 오로지 암컷에게 생존을 의탁한다. 인간은 주둥이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섹스에 목숨을 거는 것은 사마귀만이 아니다. 처녀 여왕벌이 혼인 비행을 하면 수십, 수백 마리의 수벌이 먼저 여왕벌에게 다가가려고 사투를 벌인다. 맨 먼저 도착한 행운아를 맞아들이기 위해 여왕벌이 벌침방을 열면 수벌은 수류탄이 폭발하듯 몸이 터지며 생식기를 내뿜는다. 몇 초 뒤에 펑 소리를 내며 내장이 터져 나오고 수벌은 죽은 채 땅에 떨어진다. 그야말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다.

일부 호랑거미 수컷은 교미할 때 자신의 배를 암컷의 머리에 갖다 댄다. 암컷이 집게뿔로 수컷의 배를 고정하지 않으면 수컷이 미끄러져 교미에 실패한다. 그런데 암컷은 수컷을 꽉 물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먹기 시작한다. 각다귀는 암컷이 수컷을 사냥한다. 긴 주둥이를 수컷의 이마에 쑤셔 넣고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들어 있는 침을 주입하여 액체로 변한 수컷을 마시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컷은 자신의 생식기를 암컷에게 붙인다. 암컷이 수컷의 몸을 다 빨아먹고 껍데기를 떼어버려도 생식기는 그대로 붙어 있다. 일부 거미도 생식기인 교미 촉수를 암컷에게 결합시키고 자기 몸에서 분리한다.

아텔로푸스 속 개구리 수컷은 암컷에게 한번 달라붙으면 최장 6개월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한다.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다. 자기 자신을 일종의 정조대로 이용하는 셈이다. 정조대, 곧 교미 마개는 여러 동물의 수컷이 활용한다. 두더지와 들다람쥐 수컷은 생식기 분비물을 이용하여 마치 실리콘처럼 암컷의 생식기를 틀어막는다. 그리마와 딱정벌레 중에는 크기가 자기 몸과 맞먹거나 더 큰 정자를 교미 마개로 이용하는 것도 있다. 마개가 뚫리면 대가 끊긴다.

심지어 수컷이 아예 필요 없이 처녀생식을 하는 동물도 있다. 300만종 이상의 생명체 중에서 약 1000종이 처녀생식을 한다.

아마존몰리(민물고기의 일종)는 수컷이 존재하지 않지만, 알이 부화하려면 정자가 자극해줘야 한다(정자의 염색체는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다른 종의 수컷을 속여서 정자를 갈취한다. 채찍꼬리도마뱀은 교미 동작을 하면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에 암컷끼리 번갈아 가며 수컷 역할을 한다. 인간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더는 진화할 필요가 없어지면 남자는 없어져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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