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만드는 ‘열린채널’

2001.05.01 19:02

오는 5일이면 TV 시청자들은 다소 낯선 프로그램 하나를 보게 된다. 방송전문가들이 아닌 아마추어 시청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열린 채널(Public Access)’ 프로그램이 이날 처음으로 KBS 1TV를 통해 선을 보이는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알리자는 게 ‘열린 채널’의 취지. 이제까지 방송의 수동적 수용자에 불과했던 시민들이 적극적 참여자로 나서는 시청자 주권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열린 채널’은 지난해 1월 통과된 방송법에 의해 KBS에 월간 100분 이상의 방송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운영권과 제작비 지원 등에 대한 방송사와 시민단체간 입장차이로 약 1년간 시작이 늦춰졌다. 케이블TV 등을 통한 ‘열린 채널’은 이미 미국 등에서 보편화됐지만 공중파 방송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열린 채널’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방송발전기금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직접 기획·제작하고 ▲편성 및 송출은 KBS가 하되 ▲프로그램 선정 등 모든 운영에 관한 사항은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협의회’가 맡도록 돼 있다. 운영협의회는 KBS 시청자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시민단체·시청자단체·방송진흥원 관계자와 KBS 편성부장, 변호사 등 9명으로 구성됐다.

‘열린 채널’ 첫 프로그램의 영광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제작한 ‘호주제 폐지, 평등가족으로 가는 길’이 안았다. 5일 오후 4시30분부터 28분간 방영될 이 프로그램은 남녀평등을 통한 보다 나은 인간적·민주적 삶을 염원하는 여성계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4월26일 운영협 위원들로부터 ‘방송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고 심의평가실로부터도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운영협과 시청자프로그램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너무 한쪽의 목소리만 담겨 있다’ ‘작품성이 떨어진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등 프로그램의 수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간사는 “방송법이 통과된 이후 1년 이상 ‘열린 채널’의 운영지침조차 마련되지 않아 프로그램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누구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열린 채널’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디어교육의 강화, ‘미디어센터’ 건립을 비롯한 방송 인프라의 확충 등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견해도 많다.

‘열린 채널’ 도입을 계기로 지난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개국한 대안TV 송덕호 대표는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공될 수 있느냐가 지금으로선 가장 큰 관건”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 정비나 지원체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안TV는 지난해 ‘열린 채널이란 무엇인가’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나 ‘열린 채널’의 시행이 늦어지면서 공중파 방영을 포기했으며 지금은 ‘신문개혁’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KBS 심의평가실이 갖고 있는 프로그램 심의권한을 운영협의회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KBS 시청자프로그램부 이상출 PD는 “시청자가 만드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민·형사상 소송의 책임은 KBS에 있다”며 “틀린 자막이나 간접 광고에서부터 인권침해에 이르기까지 KBS에 의한 직접 심의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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