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매력, 그 황홀한 중독‘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

2002.11.01 16:20

감기약, 최음제, 전쟁무기, 콜럼버스, 볼리비아의 공통점은?

정답은 다름아닌 고추(苦草)다. 볼리비아가 원산지로 후추를 찾아나선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퍼진 뒤 세계인의 식탁에 오른 고추는 우리나라에서만 감기 떨어지라고 먹는 게 아니다. 곳과 때에 따라 감기는 물론 관절염 치료제로, 전쟁 때 적의 공격에 맞서 매운연기를 피우는 무기로, 성욕을 부추기는 최음제로까지 애용됐다.

해외여행이라도 할라치면 볶은 고추장 한병이라도 들고가고, 대한항공 기내식에서도 튜브에 든 고추장은 꼭 따로 챙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게 다양하게 사용됐다. 외국인 앞에서 고추나 고추로 빨갛게 버무린 김치를 우리 민족만의 참을성이나 야무짐을 상징이라도 하듯 짐짓 자랑스레 먹는 장면이 TV에 심심찮게 나오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로 작은 체구를 위로하는 우리로서는 뜻밖이지만.

그만큼 고추를 먹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세계에서 4명 중 1명은 고추를 먹는다. 인도에서도 우리처럼 풋고추를 뚝 잘라 먹는다. 다만 그 1,600여종에 이르는 고추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고추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닌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쓴 ‘고추~(원제 Peppers)’에는 고추에 대한 많은 얘기가 들어 있다. 감기가 들면 소주나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마신 뒤 땀을 좍 흘리면 된다는 민간요법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게 조금은 섭섭하지만.

사람들이 고추에 푹 빠지는 것은 ‘엔도르핀’ 때문이다. 고추가 든 음식을 한입 떠먹자마자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캅사이신이 혀와 입을 강타한다. 혀와 입의 신경세포는 외부의 적, 캅사이신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실을 초스피드로 뇌에 전달하고, 뇌는 온몸을 동원해 작업에 나선다. 아구찜 등 매운 음식을 먹은 뒤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침과 콧물이 나오고 위장은 난리를 치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게 바로 그것이다. 뇌는 결국 몸이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 자연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며 엔도르핀은 고추를 먹은 사람을 모르핀처럼 진통은 물론 작은 환각상태로 몰아간다. 결국 엔도르핀이 쾌감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매운 맛을 찾는 중독현상을 빚게 되는 것이다. 고추 중독자도 적잖다. 인도 출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빈 메타는 늘 고추를 갑에 넣어 갖고 다녔다. 영국 여왕이 주최한 만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중벽화로 유명한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도 얼마나 고추 먹기를 즐겼는지 1988년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그의 벽화를 복원할 때 그림에서 고추씨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욕’과 연관돼 박해를 받기도 한다. 1970년 페루 정부는 교도소에서 성추행사건이 잦자 고추가 성욕을 자극한다며 음식에 고추소스를 넣지 말도록 명령했을 정도이다. 이는 고추가 그만큼 매력적인 산업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헝가리 고추의 일종인 파프리카 종자를 지키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이나 굴요리에 빠지지 않는 타바스코 고추소스의 상표권을 둘러싼 법정에서의 100년 전쟁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책이라는 한계로 이 책에 우리의 고추문화는 없는 것과 같다. 싼 중국산에 밀려 사라지는 우리 고추처럼 미미하기 짝이 없다. 너무 매워 혀를 내두르면서도, 속이 뒤집히는 듯한 고통을 겪고도 고추를 찾는 우리의 사랑과는 달리.

/김윤순기자 ky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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