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유치하고 치사한… 20대 여성의 초상

2004.03.01 16:25

신촌이나 강남역 근처 커피숍에 한시간만 앉아 있다보면 이십대 여자들의 의사소통의 ‘주제’와 ‘방법’에 대해 도가 트게 된다. ‘주제’는 연예인 혹은 그들의 성형수술이며, ‘방법’이란 타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누구는 어딜 고쳤고 또 다른 누구는 어딜 고쳤는데, 콧등에 부목을 대고 성형외과 병원을 나오는 거 두 눈 똑바로 뜨고 봤는데도, 아니, 자기네 삼촌 병원에서 수술 받은 거 다 들었는데도 극구 수술 받지 않았다고 시치미 떼는 걸 보면, 뭐 그런 재수 없는 것들이 다 있냐고 엄청난 반발력으로 맹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그 비난은 하나같이 연예프로그램이나 가십신문들이 보면 사흘낮 사흘밤을 반색할 치사한 팩트들로 마무리된다.

“모든 여자가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건 그 나이의 특성 아닌가요? 이십대 때는 외모나 연예인에 대한 관심을 갖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관심사가 바뀌잖아요. 결혼이나 연애, 그런 걸루요.”

여자 후배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덧붙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칭찬하긴 힘들어요. 연예인들 흉보는 건, 아무리 손을 대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거든요. 이미 포기한 이상, 더 악랄해지는 거죠. 그렇지만 솔직히 연예인 얘기만큼 돈 안들고 신나는 게 또 뭐겠어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차라리 쓸쓸했다. 이십대란, 고작 그런 따위의 외피적인 이야기들만 교환하다가 탕진해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무가치한 시간일까? 그렇게 피학적 가학적 사실들로 끌탕을 치는 이야기들만이 소위 가장 현대적이고도 트렌디한 여자들이 벌이는 매너게임의 모든 것일까? 아무리‘스타일’에 쉽게 반응하는 여성적 특질을 헤아린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여자들이 남자들의 정서적 영역으론 이해하기 힘든 미스테리한 종족이라고 해도 그것까지 용납해주기란 너무 고역스러웠다.

나는 이십대에 가져야 할 정당한 관심들이란 인류가 미처 탐험하지 못한 대륙을 개척하고, 도스토예프스키풍의 다락방에서 학문적 탐구로 불 밝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건 고딕적이다 못해 고답적인 생각이다. 나는 또 타인을 품평할 때는 밖으로 드러나는 외모가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의 동기 혹은 타인을 대하는 인식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아, 소용없다. 죄다 헛소리에 식어빠진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을 너무 모르는 구태스런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십대에 연예인 얘기나 하고, 그들이 부인하고 싶은 성형수술을 굳이 들추어내며,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만 스스로를 세울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여자들보단 내가 낫다. 난 연예인과, 성형수술과, 덮어놓고 질러놓고 보는 비난이 권세를 얻는 새로운 계몽시대를 축복한다. 하지만, 세상이 망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로맨티스트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충걸/GQ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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