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연애편지]병상의 명작을 떠올리며 붓을 듭니다

2004.04.01 16:11

-영화‘프리다’의 여주인공 프리다 칼로에게/조영남(가수)-

[서랍속의 연애편지]병상의 명작을 떠올리며 붓을 듭니다

나는 당신 말고도 프리다라는 이름의 여인을 두 사람이나 더 알고 있다오. 한 사람은 어느 개신교 목사님의 미국인 부인이시고 다른 한 사람은 성공회 신부님의 영국인 부인이십니다. 같은 이름을 갖고도 세상 사는 건 천양지차지요.

그대 프리다 칼로여, 당신은 다른 두 분과는 너무나 판이한 세상을 사셨다는 거지요. 별 것 아닌 이름 때문에 비교라도 한번 해볼까 했더니 이건 어이없게도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는군요. 두 분 성직자 부인(성공회 신부님은 결혼도 합니다)과 화가인 프리다 칼로는 일단 두가지 공통점 이외에는 비교대상이 애당초 아닙니다. 공통점의 두가지는 모두가 여자라는 것이고 모두가 프리다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거지요. 그리고 나머지는 정반대입니다.

[서랍속의 연애편지]병상의 명작을 떠올리며 붓을 듭니다

침상에 누워 심심풀이 땅콩으로 그린 당신의 그림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게 현대미술사에 남을 명작이 되었지요. 그렇다 한들 그게 병상에 누워있던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요행히(?) 그림을 잘 그려서 건진 건 뚱뚱이 공산주의자 디에고 리베라뿐이죠. 그런데 당신이 그 뚱뚱이를 만난 건 사실상 또 하나의 교통사고를 방불케하는 저주였어요. 이건 제 입으로 할 말은 아닙니다만 도대체 남녀간의 섹스를 남녀간의 악수 한번 하는 것과 똑같이 취급하는 남자를 만나다니…. 얼핏 자유로워 보이는 저도 그렇지는 않거든요.

나의 연인 프리다여. 당신이 한국인 화수(화가이자 가수) 조영남을 행여 만났더라면 그건 제3차 교통사고였겠죠. 그러나 프리다여, 나는 압니다. 팔자라는 건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나는 당신의 기구한 팔자를 유심히 들여다 봤어요. 지금의 내 팔자와 비교해 보면서 말입니다. 때때로 당신이 남긴 그림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기 때문에 나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나도 결국 당신과 비슷한 팔자를 타고난 셈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나의 연정을 마음껏 비웃어 주세요. 다음 세상에서 혹여 만날까 두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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