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고 구겨져도 소중한 세월

2004.07.01 16:12

언제부턴가 고물상을 지날 때면 저절로 발길이 멈춰집니다. 그곳에 무사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리 깨지고 저리 뭉개진 것들이 얼굴을 마주대고 지난 세월을 얘기합니다. 구문(舊聞)이 된 신문(新聞)들은 아침식탁에서 만났던 주인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낡은 TV들은 잘 나가던 시절에 만났던 애인의 애절한 눈빛을 그리워합니다. 고철들도 녹슬고 구겨져서 삐걱거리는 관절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한때 세상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음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포토에세이]녹슬고 구겨져도 소중한 세월

우린 너무나 오랫동안 새것만 좇아온 게 아닐까요. 낡고 삐걱거리는 것들에 대해 못참아하면서 빛나고 휘황한 것들만 열렬히 사랑해온 건 아닌지요. 비록 낡고 허름하지만 소중한 내력이 담긴 것들이 주변에 얼마든지 많습니다. 삶의 빛나는 시절은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인생의 8할은 고통입니다. 그 고통 속을 느릿느릿 걸으면서 참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버린 것들을 주워 담아서 편치 않은 다리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저 할머니의 뒷모습이 애처로운가요? 느릿느릿 그분의 길을 잘 걸어가고 계신겁니다.

화려했던 한 시절이 그리워져서 한숨짓고 계시다면 할머니를 따라 고물상에 가보십시오. 거기 오래돼서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시인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에서 노래했던 무수한 반동(反動)들이 거기 있습니다.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이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사진 노재덕 포토에디터|글 오광수 주말팀장 photoro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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