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석혜경씨의 ‘모유수유 투쟁기’

2005.08.01 16:15

신의 선물, 모유. 그 어떤 음식도 따라갈 수 없는 완전식품. 1일부터 7일까지는 세계모유수유연맹이 정한 제14회 세계모유수유 주간이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왜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 걸까.

[여성]석혜경씨의 ‘모유수유 투쟁기’

몸매가 망가질까봐, 병원에서 모유 먹일 기회를 주지 않아서, 젖이 잘 나오질 않아서…. 이유는 다양하다. 오죽하면 “엄마젖 최고”라고 외쳐도 모유 먹이는 풍경은 퍼포먼스로나 접하는 ‘희귀한’ 광경이 되고 말았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에서 발표한 최근 설문결과에 의하면 산모들은 출산전 83%가 모유 먹이길 원했지만 출산후 산부인과 등 출산기관에서 요양하며 모유만 먹인 경우는 21%에 지나지 않았다. 산모의 의지와 현실 사이엔 많은 장벽이 가로놓인 셈이다.

산모들의 모유수유 작전을 방해하는 ‘적’들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16개월된 윤성이를 모유로 키우며 ‘모유사랑’이라는 모임에서 지역방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석혜경씨(30·인천 작전동·회사원)의 일상을 통해 ‘적’들을 추적했다.

#수유, 멀고도 험한 길

임신 후반기 중학교 동창생과의 수다가 계기였다. 모유를 먹이려고 교육받고 있다는 친구. “직장 다니면 애한테 잘해주지 못하잖니.

모유라도 먹여.” 친구의 말에 모유수유를 결심했다.

그러나 처음 만난 적은 병원이었다. 출산후 병원에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젖을 물리는 기회가 한번 있을 뿐,

2박3일동안 아이는 줄곧 분유를 먹다 퇴원했다. 출산휴가 석달은 휴가가 아닌 고생의 연속이었다. 퇴원후 아이에게 젖을 물렸지만 이미 우윳병에 길들여진 아이는 잘 빨지도 않고 젖량도 부족한 듯 했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에게 급한 마음에 분유를 먹이고 싶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생각다 못해 찾아간 곳은 친구가 모유수유를 배웠다던 서울 강남의 한 사설클리닉. 유축기 사용, 올바른 자세, 젖 마사지를 통한 모유량 늘리기 등 궁금증들을 풀었다.

출근과 함께 본격적인 ‘모유먹이기 전쟁’이 시작됐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모유 한병을 짜 놓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 후 오전 7시 출근. 회사에선 3차례 젖을 짰다. 다음날 낮동안 아이가 먹을 150㎖ 젖병 3개에 각각 채워 보냉가방에 보관했다. 다행히 유축기를 들고 왔다갔다하는 석씨에게 직접적으로 타박을 준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장소. 화장실, 빈 사무실뿐 아니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쉬는 곳에서 짜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모유수유의 적

잊고 싶은 추억이 있다. 아이와 처음으로 전철을 탔는데 하필 퇴근시간. 칭얼대는 아이에게 모유를 먹였다. 그때 사방에서 쏟아진 따가운 시선들. ‘그날’ 이후 석씨는 불안증이 생기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은 젖먹이는 걸 이상하게 봐요. 옛날엔 어디서고 다 먹였다는데.”

사회의 시선뿐이랴. 산모들이 모유수유에 대해 딱히 물어볼 곳이 없다는 점은 모유수유를 포기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엄마가 유선염이나 간염에 걸려도 먹여도 되는지, 출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터넷 정보만 떠돌아다닐 뿐, 믿고 상담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또 있다. 넘쳐나는 분유선전들이다. 포동포동한 아이들, 세련된 엄마들이 나오는 분유광고를 보면 오히려 ‘분유의 영양이 내 젖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걱정마저 든단다. 퇴원선물로 분유와 우윳병을 주는 산부인과, 외제분유 판매까지 겸하는 소아과들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힘들었던 모유수유 탓인지 석씨는 완전 지쳤다. 만약 둘째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낳은 후 모유수유를 결심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사회 대부분의 환경이 모유수유에 적대적이거든요. 모유수유가 힘든 일, 창피한 일이 되지 않도록 국가차원의 구체적인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석씨의 외침은 세상 절반인 여성의 외침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어머니 젖의 힘으로 존재하거늘.

〈글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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