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만인보]산사나이

2007.01.01 17:51

산은 자꾸만 내게 참으라고 해. 능성이를 넘을 때마다 눈앞으로 달려드는 이 막막함, 어쩌면 삶보다 더 고달픈 오르내리는 산길의 퍽퍽함도, 눈이거나 비거나 바람이거나, 무진무진 참으라고만 해. 굴거리나무 지나면 조릿대, 조릿대마저 지나면 구상나무, 그 아래로 떨어지는 지루한 하산길도, 그저 참으라고만 해. 지친 다리를 이끌고 사람의 마을로 내려서면서 비로소 나는 알게 되는 거야. 산에서는 어떤 욕심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을, 욕심마저도 끝내 참아내야 하는 것을.

[길, 만인보]산사나이

*한라산 산행가이드 이상룡씨(37)는 공수부대 하사관 출신이다. 역시 군인이었던 선대보다 먼저 군복을 벗고 세상에 나왔을 때,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단연 막막함이었다. 군대보다 더 형편없는 세상에서 그는 매번 홀로였다. 어찌하여 그는 한라산 산행가이드가 되었고, 일주일에 꼬박 세 번씩 8시간이 넘게 산을 탄다. 어쩌면 현재 가장 많이 한라산을 종주하는 사람 축에 끼일 그는, 한라산을 오르내리면서 오로지 인내심을 배운다고 했다. 그 인내심의 끝이 무엇일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뒤를 따라 산을 내려오던 나에게도 한라산은 참으라고, 참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글·사진|유성문 여행작가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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