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속의 환상, 세계친구들

2008.02.01 16:56
원재길 | 소설가

▲시간 상자…데이비드 위즈너 | 베틀북

[아빠가 건네주는 그림책]카메라속의 환상, 세계친구들

우리 딸은 엉금엉금 길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늘 집과 학교와 미술학원을 오가며 살았다. 나는 요즘 이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받아오는 그림 주제들을 보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멋진 풍경으로 변해갈까 기대되어 한껏 기분이 풍요로워진다.

“식빵과 파를 이용하여 아프리카를 형상화하시오.”

“방울토마토와 헤드폰으로 미래의 활기찬 놀이터를 표현하시오.”

“각설탕을 입에 넣었을 때의 느낌을 각설탕과 컵으로 시각화하시오.”

데이비드 위즈너는 ‘시간 상자’에서 우리 아이가 학원에서 하는 것과 흡사한 환상 놀이를 즐긴다. 금발의 사내아이가 돋보기를 들고 희한한 게들을 관찰한다. 갑자기 파도가 아이를 덮치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자빠진 아이는 파도에 밀려온 수중 카메라를 발견한다. 아이는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 사진관으로 달려간다. 필름을 현상해 바닷가로 돌아와서, 사진을 꺼내드는 순간 아이는 깜짝 놀란다.

사진 속에서 어떤 물고기는 몸에 프로펠러와 안테나와 태엽이 붙어 있다. 거실 소파에서 느긋하게 쉬는 낙지들도 보인다. 가우디의 건축물 같은 따개비들이 덕지덕지 붙은 거북도 보이고, 외계인들은 거대한 해마들에게 에워싸여 바삐 움직인다. 복어처럼 생긴 열기구를 탄 물고기들, 고래 덩치 수십 배의 불가사리들도 보인다.

[아빠가 건네주는 그림책]카메라속의 환상, 세계친구들

사내아이가 마지막으로 꺼내든 사진 속에서, 꼭 우리나라 아이처럼 생긴 동양 여자아이가 경포대나 낙산쯤의 바닷가에서 다른 사진을 들고 있다. 그 사진 속에선 또 다른 사내아이가 역시 또 다른 사진을 들고 있다.

금발의 주인공은 이제 현미경으로 사진을 살핀다. 사진을 확대할수록 인종과 피부가 다른 어린이들이 계속 나타난다. 어느 소년은 꽤 오랜 옛날 유럽 사람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동양 여자아이 사진을 든 자기 모습을 수중카메라에 담아서 바다 멀리 던진다. 카메라는 인어가 사는 물속과 펭귄들의 나라를 지나서, 남태평양 어느 바닷가로 떠밀려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주민 소녀가 카메라를 발견한다.

환상은 이렇게 말 한마디 없이도 일순간에 천지만물과 전 세계 어린이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이런 놀이를 즐기며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가 멋지고 아름다우며 따뜻하지 않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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