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엄마랑 마실 와 “책하고 놀아요”

2008.02.01 17:40
강홍균기자 khk5056@kyunghyang

제주편을 마치며

‘설문대할망’은 전설속의 제주 할머니다. 제주섬을 만든 산파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처럼 제주섬에 책읽기의 소중함을 퍼뜨리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설문대 할망을 본따 책읽기의 산파를 자임하고 있다. 제주시 삼무공원 연동노인회관 2층에 자리한 ‘설문대 어린이 도서관’이 그곳이다. 소박한 비영리 사립문고다.

설문대어린도서관이 마련한 책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그림책을 읽고 있다.

설문대어린도서관이 마련한 책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그림책을 읽고 있다.

40평 정도 좁은 공간에 아기자기한 책꽂이와 함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빈자리도 있다. 설문대할망의 옷자락과 심장, 배를 본딴 구조라고 한다. 설문대도서관은 1998년 10월10일 제주시 연동의 한 지하실에서 시작됐다. 초대 관장은 현재 전남 순천 기적의 도서관장으로 있는 허순영씨. 허관장은 아이들의 희망공간을 하나라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사비를 털어 도서관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허관장에 이어 임기수 관장이 2004년부터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

설문대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좋은 책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거창한 독서활동이나 구호는 없다. 엄선된 6500여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도서 구입은 13명의 운영위원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뤄진다.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도서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다.

설문대 도서관은 그야말로 ‘사람’에 의해 운영된다. 250여명의 후원인이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책도 사고 임대료도 물고 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도서관을 지켜내는 힘이다. 설문대도서관의 저력은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 의해 성공적인 작은 도서관으로 선정됨으로써 다시 한번 확인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작은 도서관총서에 설문대어린이 도서관 운영사례를 덧붙였다.

설문대 도서관은 앉아서 책을 읽어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을 찾아 밖으로 나가고, 또 찾아오게 만든다. 설문대 도서관의 1년은 매우 분주하다. 월급 받는 직원 한명 없지만 수많은 행사를 치러내고 있다. 임 관장 역시 무급이다. 설문대 도서관의 2007년 달력을 다시 꺼내봤다. 빡빡한 일정으로 비어있는 공간이 없다. 고정된 행사는 올해 일정도 마찬가지다.

매주 화요일, 수요일 오후 4시30분에는 학교밖 글쓰기 ‘여근아이 손자파리’ 행사가 진행된다. 화요일은 초등학교 4~6학년, 수요일은 1학년이 대상이다. 책도 보고 읽기도 하고 그냥 신나게 써보는 놀이다.

금요일 오후 4시와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유아 그림책 교실 ‘두린 아이 속닥속닥’이 마련된다. 호기심을 가득 채워나가는 시간이다. 책읽는 오후 6시 행사는 매주 목요일과 수요일이다. 목요일은 역사책 읽는 아이들이, 수요일은 과학책 읽는 아이들이 모인다.

겨울방학을 맞아 설문대어린이 도서관이 마련한 ‘뚝딱! 인형극 놀이터’ 참가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든 인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공 | 설문대어린이도서관

겨울방학을 맞아 설문대어린이 도서관이 마련한 ‘뚝딱! 인형극 놀이터’ 참가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든 인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공 | 설문대어린이도서관

주말 책 놀이터 ‘악당 개미들, 수학 귀신이랑 놀아보자’는 공부는 절대 아니라고 강변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농촌지역 병설유치원을 선정, 매주 금요일마다 ‘행복한 책나들이’ 봉사활동을 나간다. 3년째다. 지난해는 제주시 애월읍 어도병설유치원에 나갔다. 자원봉사자 엄마들이 그림책을 들고 매주마다 유치원을 찾아 책도 읽어주고 아이들과 놀아준다. 엄마들은 유치원의 인기 ‘짱’이 됐다.

옆 마을 나들이 프로젝트는 농촌마을 1곳을 선정,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책 나들이 봉사를 하는 행사다. 지난해는 유수암마을이 대상이었다. 학부모 독서교실 ‘책읽는 여우들’은 설문대 도서관의 큰 활력소다. 아이랑 함께 책을 읽고 감동하고 서로 이야기 하고 싶은 모두가 대상이다.

여름 독서교실 ‘꽃들에게 희망을’, 겨울 독서교실 ‘책 친구들과 몸놀이해요’는 방학을 맞아 몸이 ‘근질근질’한 어린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설문대 도서관에는 1회성 행사가 없다. 공동체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한 마을을 찾아 1년씩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봉사한다. 지난해 선정한 유수암마을은 삭막했던 마을 문고가 온 주민의 사랑방으로 거듭났다. 올해는 우리 마을로 와달라고 벌써부터 신청이 몰려들고 있다.

설문대 도서관은 제주그림책연구회(회장 윤희순)와 함께 4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제주도내 곳곳을 발로 뛰어다니며 그린 그림들이다.

도서관은 후원 회원들이 월 3000원, 5000원, 1만원씩 내주는 월 100만원 정도의 돈으로 꾸려진다. 당연히 살림이 어렵다. 2003년 12월부터 3개월가량 문을 닫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힘을 보태 다시 문을 열었다. 설문대 도서관의 친구가 되고 싶다면 064-749-0070을 누르면 된다.

설문대 도서관은 제주도내 140여개 마을문고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직접 발로 뛰는 지원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책읽는 소리가 제주섬을 가득 채울 때까지 설문대 도서관의 나들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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