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위 전인권 ‘전인권’

2008.07.31 17:10
서정민갑 | 대중음악 평론가

포크·한국록 아우른 절정의 ‘창작역량’

전인권이 리드보컬로 참여했던 밴드 ‘들국화’의 1집은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명반이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불멸의 금자탑을 쌓은 들국화는 그러나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움 속에서 멤버들은 각자의 음악을 향해 흩어졌고 전인권은 들국화 시절보다 훨씬 로킹한 음악들을 선보이며 들국화에 미련이 남은 이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95위 전인권 ‘전인권’

허성욱과 함께한 전작 ‘머리에 꽃을’ 앨범에서 그는 자신이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며 동시에 뛰어난 창작자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흡사 상처 입은 야수가 절규하듯 울부짖는 그의 보컬은 김현식과 함께 1980년대의 치열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민주화의 열기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던 시대의 격랑만큼 에너지 들끓는 보컬리스트였던 그는 밴드 파랑새를 거느리고 최구희와 허성욱의 조력을 받아 들국화 이후 자신의 첫 번째 독집 앨범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 그는 ‘머리에 꽃을’ 앨범보다는 덜 로킹하지만 자신의 음악적 뿌리였던 ‘따로 또 같이’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며 포크와 한국적 록음악을 아우르는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김효국의 하몬드 오르건이 음악적 질감을 훨씬 고전적이며 풍부하게 채워주는 가운데 그의 보컬은 여전히 펄펄 살아 뛰고 있다. 외쳐대는 데에만 강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그의 보컬이 조용히 탄식하는 데에서도 깊은 맛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돛배를 찾아서’나 ‘헛사랑’ 같은 곡은 전인권의 뿌리와 진면목을 알게 해주는 트랙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앨범의 가장 빛나는 트랙은 ‘아직도’였다.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노랫말의 곡이지만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처연한 정서는 전인권의 보컬과 함께 최구희와 허성욱의 빛나는 연주를 통해 가슴 시리게 완성된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랑의 상처를 아프게 더듬는 전인권의 보컬이 지나가고 그 먹먹한 빈 자리를 채우며 최구희의 기타 연주와 허성욱의 피아노 연주가 어울리는 순간은 실로 들국화의 마지막 현현(顯現)이었다. 또한 1997년 미국에서 산화해버린 허성욱의 감성적인 손길이 우리 곁에 마지막으로 머무른 순간이기도 했다. 이 한 곡만으로도 당시 절정에 오른 전인권의 창작 역량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앨범에 실린 ‘돌고 돌고 돌고’도 대중적으로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으며 ‘머리에 꽃을’에 이어 다시 한번 실린 ‘사랑한 후에’ 역시 솔로 전인권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여기에 ‘가을비’가 합세해 뺄 만한 곡이 없는 앨범이 된 1집 덕분에 전인권은 들국화 출신 가운데 유일하게 대중적 인기와 음악적 완성도를 계속 이어나간 유일한 뮤지션이 됐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듬해 내놓은 자신의 두 번째 앨범에서 ‘빨간 풍선’을 선보인 이후 계속해서 약물과 도박에 빠져 자신의 히트곡을 되풀이하며 역량을 소진하고 말았다. 한상원과 함께한 앨범이 의미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들국화 3집’을 위시한 그의 앨범은 과거의 앨범들에 비해서는 너무나 힘이 떨어지고 부족한 것이었다. 조용필과 함께 19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었던 그가 결국 이름만 남은 채 희화화되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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