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뿌린 씨앗 결실 맺기 위해 온 힘”

2009.10.25 17:06 입력 2009.10.26 09:32 수정
허건·신지혜

육근해 점자 대표

육근해 도서출판 ‘점자’ 대표는 ‘점자’의 경영자이기도 하지만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 교수 등을 맡아 독서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족이 사재를 털어 점자도서관을 세웠다.

[사회적기업이 희망이다]“아버지께서 뿌린 씨앗 결실 맺기 위해 온 힘”

“아버지가 시작장애인이셨다. 40년 전 전 재산을 털어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난 뒤 15년간 우리 가족이 직원이었다. 학교 다녀오면 숙제보다도 점자책 인쇄에 먼저 매달려야 했다. 오빠는 점자판을 찍고, 엄마는 인쇄하고, 나는 실과 바늘로 책을 엮는 일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내가 이 일을 도맡게 됐다. 1997년 정부가 지원해주기 시작하면서 후발 점자도서관이 전국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선친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나가시던 분이다. 올해가 한국점자도서관이 설립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이 도서관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배우고, 스스로 능력을 개발하는 터전이었다. 아버지가 뿌린 씨앗으로부터 내가 결실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의 이익과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행복하다.”

-점자책 제작에 나선 계기는.

“처음에는 이 일을 안 한다고 버텼다. 나는 막내딸이었다. 고3 때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전기가 끊기곤 했다. 촛불을 켜고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아버지의 질긴 요청으로 도서관 일을 도와드린다고 한 것이 업이 됐다.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 점자도서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느꼈다. 90년대 후반 복지관이 생기면서 점자 프린트도 가능하게 됐다. 점자도서관이 중요하지만 책을 출판하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도서출판 ‘점자’를 세웠다.”

-어려움은.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약자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런데도 장애인사업을 무조건 입찰제로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수의계약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아직까지는 관심 부족으로 잘되지 않고 있다. 주위의 무관심은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소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호전되어 간다. 40년 전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걸으면 ‘장님 재수없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이후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가 생기고 많은 의견이 수렴되면서 표면적으로 시각장애인과 관련 독서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생겨나고 있다.”

-꿈은.

“우리 회사의 슬로건은 ‘나눔의 출판문화’다. 기존의 출판사들은 우리를 발판삼아 직접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 더불어 대체도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사렛대학교에서 점자문헌정보학을 가르치는 것도 더 많은 사람과 이 일을 함께하고 싶어서다. 우리나라 도서관과 양로원에 대체도서가 확산되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또한 ‘점자’의 모든 직원들의 대우 조건을 높여서 여타 중소기업 부럽지 않은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싶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인 분들이다. 나 혼자 운영하는 기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하는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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