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스타’도 잘 자라야할 ‘아이들’이다

2009.10.25 17:58
김태훈/ 팝칼럼니스트

[판]‘아이돌 스타’도 잘 자라야할 ‘아이들’이다

최근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팝의 왕이 살아온 일대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불과 5살의 나이에 쇼비즈니스계에 들어와 죽음 직전까지 스타로 살다간 그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를 읽어내는 하나의 텍스트로서 유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자서전의 초입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연주와 춤을 가르친 아버지 조 잭슨에 대한 일화들이 상세히 쓰여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서전이 그렇듯, 가족을 언급한 부분에선 적절한 가감을 통한 아름다운 이야기들만이 보인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추문에 대해서는 애써 거론하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이 처음 음악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형제들로 이루어진 그룹 잭슨 파이브였다. 막내였던 그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노래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형제 그룹의 말로는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나머지 형제들이 성인이 된 후, 아버지 조 잭슨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의 자신들을 쇼비즈니스계에 데뷔시킨 후, 정상적인 학업을 중단시켰고, 수익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보여주었던 갖가지 기행에 대한 추리로써, 이 대목을 거론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 또래의 아이들이 지나왔어야 할 일상을 박탈당했고, 그래서 사회성이 결여된 영원한 피터팬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2009년 대한민국의 음악계, 그중에서도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를 지나치고 있는 지금, 이 주장은 곱씹어 볼 만하다. 인터넷의 연예 뉴스를 심심치 않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모 그룹의 멤버가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탈진했다’ 혹은 ‘링거 투혼으로 방송 출연’ 등의 살벌한 기사들이다. 하나의 꿈을 향해 달려왔다는 감동(!)적인 인터뷰로 인해 해피엔딩으로 포장되긴 하지만,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불과 16, 17살 나이의 아이들이 방송 출연과 행사 스케줄 때문에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것이 미담으로 떠도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 걸까? ‘부모의 동의하에’ ‘스스로 원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들로 포장되어 있지만, 과연 이 현상에 대해 우리들의 책임은 없는지 물어 보고 싶다.

유럽 국가들에선 심야 시간 미성년자들의 생방송 출연이 금지되어 있다. 아이들의 취침 시간을 보장하고, 노동 착취에 준하는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킨 영화 해리 포터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개월의 장기 촬영에 소모될 아역 배우들을 위해, 교사들을 현장에 상주시켜 학업과정을 이수토록 했고,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체크 했다는 점은 아이돌 전성기의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예 뉴스의 또 다른 한쪽 면엔 아이돌 스타들의 사건, 사고가 크게 게재된다. 몇몇 스타들은 자숙의 시간을 거쳐 재기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몇몇 스타들은 영원히 연예계를 떠나야 한다. 관심이 쓰이는 쪽은 후자이다.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연예계의 활동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기회들이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학교생활로부터 이미 멀어져 있고, 다른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이들에게 남아 있는 삶이란 고통의 시간이 될 확률이 높다.

지금도 대형 기획사의 연습실엔 연습생들이 넘쳐 난다. 그들에겐 빅뱅과 보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삶이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보장해주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책임은 아닐는지.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일어날지도 모를, 우리들을 향한 집단 고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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