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숙제·공부… 하루에 2시간도 못놀아요”

2009.11.01 14:40
이로사기자

→ 초등4년 이정식군의 괴로운 하루

터벅터벅 땅을 보며 걸어가는 초등학교 4학년 이정식군(가명·11)은 축 늘어져 있었다. 지난 26일 정식이가 빡빡한 하루 일정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9시. 정식이는 “그래도 저는 좀 많이 노는 편인 것 같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검도 학원이 끝나고 1시간가량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 놀았단다. “많이 노는 쪽”이라는 그의 일과는 어떨까.

<b>주인없는 놀이터</b>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면서 서울의 한 아파트 놀이터가 텅 비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인없는 놀이터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면서 서울의 한 아파트 놀이터가 텅 비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정식이에게 가장 바쁜 날은 월요일이다. 기상시간은 오전 7시. 아침을 챙겨 먹고 8시10분쯤 집을 나선다. 학교는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다. 수업은 8시40분쯤 시작된다. 40분 수업·10분 휴식이다. 오후 1시20분, 5교시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아직은 ‘방과후 수업’이 남아 있다. 정식이는 정규 수업을 마치고 채 10분도 안 돼 바로 방과후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이동해야 했다. 오후 1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단소 수업, 오후 2시30분부터 컴퓨터 수업을 한다. 방과후 수업을 모두 끝내니 오후 3시30분이었다.

[지령 20000호 특집]“학원·숙제·공부… 하루에 2시간도 못놀아요”

“중학교 때 수행평가에 단소랑 컴퓨터가 들어간대요. 얼마전 피아노를 그만 둬서 악기를 뭐 하나 해야 한다고…. 또 컴퓨터 자격증 있으면 수행평가 가산점이 있다고 해서 엄마가 넣은 거예요. 컴퓨터는 제가 배우고 싶기도 했고요.”

방과후 수업을 마친 정식이는 재빨리 책가방을 쌌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빠듯했다. 일주일에 두 번 받는 영어 과외를 해야 할 시간이다.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했다. 정식이가 제일 좋아하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정식이를 맞았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강아지와 노는 것도 잠시, 4시40분쯤 과외 선생님이 왔다. 선생님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한국인이다. 수업은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이용해 영어로 한다. 정식이의 영어는 수준급이었다. “영어는 유치원 때부터 해서 못 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애들 다 이 정도는 해요.” 오후 5시40분쯤 영어 과외 수업이 끝났다.

과외를 마친 후 오후 6시쯤 저녁을 먹었다. 이미 날이 어두웠다. 그러나 정식이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후 7시 검도복을 입고 검도 학원으로 향했다. 2시간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9시. 파김치가 돼 집에 온 그는 “이제 숙제 해야 돼요”라고 했다. 숙제는 물론 매일 엄마가 정해준 분량의 문제집도 풀어야 한다. 정식이의 어머니는 “과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주위를 봐도 이 정도면 아주 평균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숙제를 하고 문제집과 씨름하다보니 어느새 11시가 가까웠다. 불 끄고 이불 속에 들어간 건 11시30분. 이날 하루 동안 정식이가 가진 자유시간을 꼽아보니 고작 2시간 정도였다.

주말에는 농구교실, 여름방학에는 농촌체험 캠프, 겨울에는 스키캠프로 바쁘다. 정식이의 어머니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이번 겨울 새로 생긴다는 직업체험관에도 데려가볼 생각이다. 이렇게 드는 사교육비는 한 달 평균 100만원 정도다.

“유치원 때는 영어유치원 하나만 보내도 100만원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오니 그나마 좀 준 편이죠.”

어머니는 정식이의 중·고등학교 진학 계획도 세워 놨다. “중학교는 남중을 보내고 싶어요. 남녀공학의 성적이 더 안 좋단 얘기가 있잖아요. 특목고도 본인이 원하고 공부를 잘 하면 물론 보내고 싶죠. 그건 중학교 가서 좀더 지켜보려고요.”

어머니 말대로 정식이의 경우가 특별한 건 아니다. 지난 23일 찾은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5학년 한 반 학생 3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1명은 하루 3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개 이상 학원을 다닌다고 대답한 학생은 19명이었다. 이 중 7명은 5개 이상의 학원을 다닌다고 답했다. 반면 하루 중 노는 시간은 절반 이상이 2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지금 가장 싫은 것’을 묻는 질문에는 17명이 ‘학원·숙제·공부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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