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다”

2009.11.01 14:54 입력 2009.11.02 00:55 수정
강진구기자

불법적 마케팅·불공정 보도…구독자 이탈 가속화 주요인

“올해 쉰 한 살 먹은 큰아들놈이 중1 때 (신문 가판대 일을 ) 시작했으니까 벌써 30년이 넘은 모양이야.”

“근데 요즘은 공짜신문도 넘쳐나고 볼 게 얼마나 많아. 그러니 누가 굳이 돈 주고 사보려하겠어.”

지난달 22일 서울 동아일보 사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출보험공사 앞. 이 일대에서 30년 이상 가판대에 의지해 살아온 안모씨(73·여)는 쌀쌀한 날씨 탓에 잔뜩 몸을 웅크린 채 70~80년대 ‘호(好) 시절’을 씁쓸히 추억했다.

[지령 20000호 특집]“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다”

“예전에야 담배나 과자 이런 것 진열 안 해도 먹고 살 만했지. 2~3가지 신문만 깔아놔도 하루에 200~300부 파는 건 일도 아니었거든. 그런데 요즘은 머리 허연 노인네들 아니면 누가 잘 쳐다보지도 않아.”

안씨가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한국의 신문산업은 지금 미증유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의 수용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신문가구 구독률은 1998년 64.5%에서 지난해 36.8%로 10년 사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한국광고주협회가 지난 9월 한 달간 전국의 성인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가구구독률이 31.5%로 다시 떨어졌다. 특히 신문을 외면하는 연령대가 젊은이뿐 아니라 핵심구독층으로 여겨져온 40대로 확산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진 86년 대학에 입학한 김백철씨(43)는 “1999년까지는 신문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컴퓨터를 중심으로 일을 보면서 신문을 끊었는데 불편함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아도 충분한데 구태여 신문을 사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2009년 광고주협회 조사결과에서 뉴스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는 TV(57.7%), 인터넷(19.8%), 신문(14.8%) 순으로 나타났다. DMB 휴대폰 등 첨단 디지털 매체가 보급되면서 지하철, 버스는 물론 휴식 중에도 신문을 읽는 사람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신문의 위기를 단순히 ‘디지털미디어’라는 외부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건 온당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신문 구독자의 급속한 이탈 원인 중 하나로 불법적인 경품 마케팅과 불공정 보도로 인한 ‘신뢰의 위기’를 지적한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는 “외국과 비교해보면 한국신문의 급격한 구독자 이탈 추세는 단순히 인터넷 등 경쟁매체에 의한 기능적 대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며 “가장 심각한 것이 신뢰와 공정성 위기”라고 말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 연구소장도 “거대 신문의 경품을 동원한 과도한 판촉경쟁과 신문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난 정파적 보도가 신문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신문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령 20000호 특집]“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청계천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씨(23)는 “아버지가 집에서 ○○일보를 보지만 난 신문을 보지 않는다”며 “신문이란 게 반(反) 이명박, 친(親) 이명박 정해놓고 서로 자기 얘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IT업체에 근무한다는 구균모씨(28)도 “신문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고, 쓸데없이 몰라도 되는 것까지 다루는 것 같아 싫다”며 “판촉사원들이 경품을 들이밀며 신문을 억지로 보라고 하니까 더 보기 싫어진다”고 말했다.

신문의 위기가 ‘신뢰의 위기’라는 진단은 통계수치로도 입증된다. 90년 언론재단 조사에서 응답자의 55.4%가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 신문을 지목, TV(34.7%)를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2008년 조사에서는 ‘신문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비율이 16%에 불과해 TV(60.7%)는 물론 인터넷(20.0%)에도 뒤지는 3위에 그쳤다.

외국계 생명보험회사에 근무하는 김영권씨(39)는 “신문의 정치면은 각 신문사의 주관이 너무 드러나서 제목만 봐도 짜증이 난다”며 “뉴스를 얻는 통로로 신문보다는 인터넷상의 실시간 뉴스검색에 점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문보다 인터넷을 통한 뉴스 소비가 늘어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정재민 교수는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초기화면에서 제공되는 기사들이 정말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보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며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금치처럼 몸에 좋은 뉴스가 아니라 사탕처럼 입에 단 뉴스 위주로 미디어환경이 재편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문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문가들은 먼저 각 신문사들이 미디어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의 옛 영화(榮華)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현실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품이나 무가지를 동원해 발행부수를 늘리려 하지 말고 신문의 신뢰와 평판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제공, 고급한 논평, 심층적 해석 등 매체의 특성을 살려 가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게 필수다.

언론재단 김영욱 수석연구위원은 “앞으로 신문 시장에선 신뢰성을 가진 신문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민 교수는 “그동안 신문사는 일방적으로 기사를 만들어 내보내는 것에 익숙해 있었으나, 이제 소비자에게 주권이 넘어간 만큼 소비자에 대한 이해, 독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5년도에 신문의 위기와 신뢰의 위기 간의 상관관계를 실증분석했던 이준웅 교수는 “신문은 위기에 처한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며 “자신을 돌보는 일은 과연 스스로 공정한가, 제값을 다하는 고품질의 뉴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다른 뉴스채널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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