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퓨처

2010.12.22 20:54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칼럼]백 투 더 퓨처

대북정책과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에 북한 문제는 북한 체제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김정일 정권의 행태가 바람직한가 아닌가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도덕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전략과 정책의 효율성 혹은 합리성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굳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이유는 딱 한 가지, 북한 문제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개입의 부족을 정당화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끊임없는 관심과 간여가 필요한 북한 문제에 대해 변명거리를 남겨두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핑계댈 여지가 많은 대북정책의 운명이 어떨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실패. 우리가 지금 불안해할 뿐 아니라 대단히 불편하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건 바로 대북정책의 실패 때문이다.

그 실패로 우리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천안함 침몰 사고가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한 뒤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으로 달려갈 때만 해도 병정놀이 같았다. 그러나 우리를 아주 조금 흔들던 그 불안은 차츰 쌓이고 커져 이제는 전쟁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살과 피를 요구하는 진짜 전쟁의 가능성으로 우리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연평도 포사격 훈련뿐 아니라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하찮은 것들조차 우리를 불안의 심연으로 안내한다.

북한 적대시하며 불안의 악순환

조용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우리를 안심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이제 평화의 증거가 아니라 곧 닥칠지 모를 불안의 전조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불안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는 것은 까닭 모를 평화가 아니라, 도심의 하늘을 날카롭게 찢는 공습 사이렌, 군대의 포성과 같은 소음이다. 아니면 웬만한 전쟁 하나를 치를 수 있다는 조지 워싱턴호, 분당 3000발을 발사하는 벌컨포, 반경 50m 이내를 초토화한다는 K-9 자주포와 같이 많은 사람을 더 빨리 죽일 수 있기에 성능 좋다고 소문난 값비싼 무기들이다. 무상급식할 돈은 없어도, 복지 축소로 이웃들의 삶이 휘청거린다 해도, 부자감세로 세금이 덜 걷힌다 해도 무기 살 돈은 충분해야 한다고 여야 합의로 국방비를 순식간에 수천억원 증액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곤경에서 구출할 수 있는 돈을 사람 죽이는 일에 쏟아부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고 우울하게 한다.

치유할 수 없는 이 불안은 자기 불신을 낳고 그 불신은 미국 의존을 불러오고 그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양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안보를 남의 나라에 맡긴 정부가 경제 주권을 내준들 이상할 것이 없다. 정부는 이렇게 한·미관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북한을 중국 쪽으로 밀쳐내 북·중은 더 가까워지게 남북은 서로 멀어지게 했고, 한·중은 갈등관계로, 동북아는 냉전시대의 대립 구도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우리와 주변을 불안의 악순환에 빠뜨렸다. 이 감당 못할 혼란과 불안은 오직 북한과 적대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단지 북한과 대결하느라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동원해야 했고, 그러고도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대북정책 실패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고, 우리는 초라한 신세, 불쌍한 처지가 되었다.

만일 볍씨만큼이라도 이래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묵묵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정부는 문제의 본질에 단 한 발도 다가선 적이 없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 정도의 불안은 없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국방비를 늘리고 안보와 경제를 미국에 내주고 주변국과 갈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불안 속에 살고 있다. 무슨 대단한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다.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포탄을 맞지 않기 위해서이다.

실패한 대북정책 시민이 환수를

연평도 포사격 훈련을 준비하던 지난 주말 해병대 헬멧에 적힌 구호 하나가 눈에 띄었다. 멸공. 이명박 정부의 군대가 타임머신 타고 수십년 전으로 돌아갔나 보다. 지금 북한에는 공산당이 없다. 노동당이 있을 뿐이다. 공산주의도 없다. 공산주의는 이미 지난해 북한 헌법에서, 지난 9월 당규약에서 사라졌다. 없는 공산당 때려잡자는 냉전시대 구호는 대북정책의 목표를 상실한 이명박 정부의 표류를 상징한다. 대북정책, 너무 중요한 것이라 이명박 정부에 계속 맡겨두어서는 안될 것 같다. 시민들이 고위험, 고비용, 저효율의 대북정책을 환수하자. 그리고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한반도를 21세기의 제 시간으로 돌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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