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돈은 돼요?”

2011.02.06 18:48 입력 2011.02.06 20:30 수정
김현진 | 에세이스트

안 벌고 안 쓰고 잘 살아 보겠다는 결심은 마음 제대로 안 잡으면 순식간에 훨훨 추락한다. 도서관 가는 걸 게을리하고 책을 멀리했더니 며칠 만에 이렇게 살지 말고 남들처럼 살아야 되지 않겠나, 하고 고민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한마디로 철학이 빈곤해지는 순간 끝도 없이 찌질해지는 거였다. 안빈낙도, 안빈낙도 하고 아무리 외워도 머릿속에서 빈티 나는 순간 삶의 빈티를 감당 못하겠으니 역시 안빈낙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꼭 보고 싶은 사람들,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아껴서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도를 좀 닦아 보려 했는데 부자 되세요, 하는 주문이 여전히 싱싱하게 유효한 대한민국에서 아무나 닥치는 대로 만났다가는 그거 돈은 되냐, 하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게 되어서 그랬다.

[포럼]“그거 돈은 돼요?”

그거 돈은 돼요? 무서운 질문이다. 내가 돈 되는 일 못하고 사는 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노인도 청년도 장년도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할 것 없이 죄다 누군가를 만나서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물어 본 다음에 바로 나오는 질문은 언제나 “그거 돈은 돼요?” 라서 그렇다. 이를테면 나에게 무슨 일 하시냐고 하면 그냥 아르바이트 하면서 틈틈이 글 쓴다고 바른대로 대답하는데, 무슨 글 쓰냐고 물어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하나같이 그거 돈은 돼요? 원고료 많이 줘요? 책 내면 돈 많이 벌어요? 라고 안 묻는 사람이 없다. 원고료는 물가 인상과 상관없이 징하게 안 오르고 안 팔리는 책이나 내니까 돈 많이 못 번다고 사실대로 대답하면 표정도 하나같이 에이, 하는 얼굴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도 어김없이 똑같다. 누구누구는 그런 일 해서도 돈 많이 벌었다던데, 잘 나가는 책 하나 터뜨리면 완전 대박이라던데, 하는 화제는 별로 ‘터뜨린’ 적도 없고 앞으로도 터뜨릴 일이 없는 나에게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대박’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같이 황홀해서, 너무 황홀한 그 표정들 앞에서는 그냥 도망치고만 싶다. 누구를 만나도 대화는 어김없이 깔때기처럼 그거 돈은 돼요? 하고 수렴되어 버리니 그냥 안 만나고 사는 게 편하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이제 나이 서른 넘어 연애하려니 여차저차 시장도 협소해졌고 그렇다고 지금 가릴 게 있냐며 철학이 부재한 남자를 막 만났다가는 같이 술이나 마시며 어영부영 몇 달 시간 죽인 꼴이 되어 허망할 뿐이다. 그거 돈은 돼요? 라고 안 묻는 남자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워서 연애하고 싶은 마음에 그냥 좀 귀엽다고 좋아해 버리면 안되는 거였다.

돌이켜 보면 죽어도 삼성 차를 사겠다면서 그걸 죽자사자 말리는 나를 의아해하던 그 남자도,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다면서 내가 오래된 물건 붙잡고 고장나지 않은 한 다시 사지 말자고 하면 구질구질하다는 얼굴로 눈살 찌푸리던 그 남자도, 돈 좀 쓰고 좋은 거 누리는 게 뭐가 나쁘냐고 묻던 그 남자도 다 나랑은 어차피 안될 남자들이었던 것이다.

안빈낙도하겠다는 주제에 안부낙도하시겠다는 분들은 어차피 상대가 안되는 거였는데, 상대할 수 없는 거였는데. 그래서 하시는 일은 재미있으시냐고 선수치기로 했다. 이렇게 물어보면 가끔 역정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백발백중 그거 돈은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다. 일이 재밌어서 하냐고 버럭 화내면 그럼 왜 하냐고 한 번 더 심술부릴 셈이다. 아참, “그거 돈은 돼요?” 라고 묻는 사람과는 아무리 귀여워도 연애하지 말 것, 물론 그쪽에서도 내가 별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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