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970년대 ‘연합적군 사건’ 주범 병사

2011.02.06 20:51 입력 2011.02.06 22:23 수정

좌익운동 주도 나가타, 구치소서

1971∼72년 ‘연합적군 사건’ 당시 좌익운동을 주도하면서 동료를 살해해 사형이 확정된 나가타 히로코(65)가 5일 도쿄구치소에서 지병으로 숨졌다고 일본 언론이 6일 전했다.

나가타는 71년 게이힌안보공투(일본 공산당혁명좌파조직)와 적군파가 합쳐 결성한 ‘연합적군’의 실질적 리더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연합적군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63년 교리쓰약대에 입학한 뒤 좌익운동에 뛰어들었고, 졸업 후에는 병원에서 약제사로 근무하면서 미군기지 철거 투쟁 등에 참가했다.

日 1970년대 ‘연합적군 사건’ 주범 병사

71년 8월 조직을 이탈한 동료 2명을 죽인 ‘인바누마 사건’과 71년 12월∼72년 2월 군마현 하루나산에서 12명을 집단구타로 살해한 ‘산악기지 사건’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적군파는 경찰의 추적을 받았고, 이를 피해 도주한 적군파들은 72년 2월 인질을 붙잡고 나가노현 ‘아사마 산장’에 들어가 농성하면서 경찰관 3명을 사살했다. 당시 아사마 산장 사건은 생중계돼 일본 전역을 전율에 떨게 했다.

72년 체포된 나가타는 연합적군의 또 다른 간부인 사카구치 히로시와 함께 재판을 받아 93년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살인 및 상해치사죄 등으로 사형이 확정됐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6번째 여성 사형수로 기록됐다. 당시 적군파 17명이 기소됐으며, 이 사건을 끝으로 일본에서 적군파의 활동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나가타는 84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82년에는 옥중에서 동료를 살해한 과정 등을 상세하게 묘사한 <16명의 표석> 등 저서를 펴냈으며, 그의 삶은 <실록 연합적군 아사마 산장의 도정(道程)> 등 많은 영화에서 모델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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