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명절이나 뜻깊은 행사,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정성을 담아 선물을 건넸다. 설이나 추석에 아이들에게 빔을 해 입혔고, 동문수학하는 벗이 학문에 정진하길 바라며 붓이나 벼루를 선물하기도 했다. 임금은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신하들에게 하사해 노고와 충성을 치하했다. 주는 사람은 고마움을 전하고, 받는 이 역시 물질적 가치보다 선물에 담긴 진심에 감사를 느꼈다. 그에 더해 주고받는 이들 사이에 공유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선물 하나 때문에 나라가 온통 난리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가방’ 문제가 여론을 들쑤셔놓았다. 지난해 11월 한 인터넷 매체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김 여사가 2022년 9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재미동포 목사에게 300만원 상당의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 핸드백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김 여사는 “이런 걸 자꾸 왜 사오느냐”면서도 선물은 거절하지 않았다. 목사의 주장에 따르면 약 10차례 김 여사에게 면담 요청을 했으나, 두 차례 명품 선물을 준비했을 때에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명품가방 수수 사실이 드러난 이후 대통령실과 여당의 대응도 문제였다. 국민감정은 들끓었지만 어떤 사과도, 유감표명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문제의 명품가방을 ‘대통령실 기록물’이라며 창고에 보관 중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내놓았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건 본질을 “선대의 친분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함정을 만든 ‘몰카 공작’이자 ‘정치 공작’”으로 규정했다. 여당 의총에서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7일 KBS 녹화 대담을 통해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 공작”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만 했다. 대담을 진행한 앵커는 ‘명품가방’이란 표현 대신 ‘파우치’라고 했고, “조그마한 백을 어떤 방문자가 김 여사를 만나 놓고 가는 영상이 공개됐다” 등 돌려 말해 가뜩이나 안 좋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명품가방을 명품가방이라 부르지 못하는 KBS는 홍길동이냐’는 조롱까지 나왔다.
사안 자체만 놓고 보면 명백한 법 위반이란 사실을 누구나 다 안다. 이른바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다 처벌한다는 것과 지금까지 형법상 뇌물죄에 해당하지 않았던 ‘대가성’이 증명되지 않는 경우도 처벌 대상이다. 특히 공직자는 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면 즉시 신고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여당·대통령실은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다.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는 심산인 것 같다.
참으로 부끄럽다. 준비 부족으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지난해 세계잼버리, 한국 외교사의 참패로 기록될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때도 그랬고,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 책임회피에 급급한 정부 당국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수치를 느꼈다. 이런 일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외신들까지 나서 ‘디올백이 한국 정치를 뒤흔든다’는 기사들을 내보내는 걸 보면서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함까지 들었다. 문제는 늘 그랬듯이 부끄러움의 주체는 오롯이 국민들이란 점이다.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가운데 하나다. 맹자는 이와 함께 남을 측은하게 여기고 사양할 줄 알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사람이라면 지녀야 할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되레 큰 소리 치며 적반하장으로 몰고 가는 행태가 비일비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이들에게 예의나 염치를 모르느냐고 일갈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판에 무슨 인의예지냐’는 핀잔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지 모른다. 더구나 이 정권에서 ‘성역’이자 ‘역린’인 ‘여사 문제’를 건드려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누가 나서겠나. 입버릇처럼 외쳐온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준엄하게 꾸짖었다. “수치심이 없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제발 좀 부끄러운 줄 알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