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인권 교육 가난 문제 고발하는 길거리 정치는 곧 복음의 정치

2013.12.18 11:29

<교황 프란치스코>(알에이치코리아)는 교황이 추기경이던 2009년 무렵 아르헨티나의 두 신문 기자와 나눈 대담집이다. 교황은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어린 시절부터 추기경으로서 당면한 가톨릭 문제까지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자들에게 막힘 없이 말한다. 책을 보면, 자본주의와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고, 가난한 이들을 우선하며, 사제들의 현실참여를 촉구한 교황의 최근 발언이 즉흥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성애자, 무신론자, 낙태여성에 대한 전향적 목소리를 낸 것도 오래된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대답집은 잘 보여준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추기경이던 2008년  지하철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나고 있다. 알에이치코리아제공

교황 프란치스코가 추기경이던 2008년 지하철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나고 있다. 알에이치코리아제공

교황은 대답 초반 유년을 떠올리며 “인생 여정에서 그를 가장 잘 단련시켜 준 건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 방학마다 일을 했다. 회계사 아버지가 업무를 봐주던 양말 공장에서 2년 동안 청소 노동을 했다. 식품 화학을 전공하는 공업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그는 일했다. 교황은 ‘노동’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노동은 현실주의의 문을 열어주는 지름길이며 하느님의 분명한 계명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해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 말씀은 땅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여가 문화도 강조한다. “일하는 사람이 잠시 쉬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즐기고, 독서하고,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존엄성이란 일을 통해서만 확보됩니다. 내가 스스로 벌어먹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소비사회 경쟁구도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주일에도 일을 하게 됐다. 교황은 이를 노동이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상황으로 규정하며 “일이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건강한 여가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인간은 일의 노예가 된다”고 말한다. 교황은 대담집 여러 곳에서 노동을 강조한다. 사회 문제 해결하는 비결도 ‘일하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노동’이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심각한 경쟁 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을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봐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이익을 내는 것이나 자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은 “현실에서 교회는 도대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에 “정당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십계명과 복음서를 기반으로 한 위대한 정치에 참여하는 겁니다. 인권 유린과 착취 또는 배척 상황, 교육 또는 식량 부족 상황을 고발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황은 ‘길거리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정치를 하지만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2009년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진행한 미사 중 핸드카를 가져온 넝마주이에게 다가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당시 추기경) 알에이치코리아제공

2009년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진행한 미사 중 핸드카를 가져온 넝마주이에게 다가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당시 추기경) 알에이치코리아제공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당면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성직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유혹 중 하나가 바로 목자가 아닌 관리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 안에는 단 한 마리 양이 있을 뿐이고 99마리 양이 길을 잃었는데 찾아나서지 않는다”며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가톨릭 신자라면 모두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 문제를 논하면서 ‘권위’를 강조한다. 교황이 말하는 권이는 명령에 따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권위(autoridad)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auge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장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억압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또 증오보다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오만함을 가장 혐오한다고 했다.

교황은 낙태를 반대한다. 하지만 낙태 여성에 대해 “얼마나 큰 심적 부담을 느끼겠는가를 생각할 때 성서적인 의미에서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전투 상황에 가까운 가톨릭의 낙태 반대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낙태가 복지와 연계되는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환시시킨다.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연적으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듯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투에는, 임신 기간 중 산모에 대한 배려, 산후 여성 보호법의 존재, 영·유아에 대한 적절한 영양 공급 보장 필요성, 전 생애에 걸친 보건서비스 제공, 조부모 공양, 안락사 금지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바라카스 빈민촌에서  진행한 세족식 때 주민들의 발을 씻어주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당시 추기경)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바라카스 빈민촌에서 진행한 세족식 때 주민들의 발을 씻어주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당시 추기경)

교항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고의 미덕을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사랑”이라며 “이 사랑은 온화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증오보다도 오만함을 가장 혐오한다고 했다. “오만함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책엔 교황의 트레이드마크인 겸손함과 검소함에 관한 일화도 들어 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된 뒤 전임자의 복장을 수선해 입으려고 했다. 일부 신도가 로마 여행을 계획하자, 그들에게 여행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설득했다.

휠덜린의 시, 탱고, 푸르트벵글러 버전의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3번, 마르크 샤갈의 ‘백색의 그리스도 수난도’를 좋아하는 ‘인간 프란치스코’의 면모도 책에서 볼 수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