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영화 ‘감기’ 재조명되는 이유는

2015.06.09 21:14 입력 2015.06.09 21:41 수정

전염병 대처 무능한 정부… 메르스 사태와 ‘판박이’

컨트롤타워의 부재… 불안·분노 반영

다운로드 급증, 평점 다시주기 ‘열기’

2013년 8월 개봉한 영화 <감기>(사진)는 아파트가 밀집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변형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퍼진 뒤 벌어지는 사태를 상상적으로 그린 영화다. 분당소방서 구조대원인 지구(장혁)와 감염내과 의사 인해(수애)가 급속도로 퍼지는 전염병 재난 상황에서 인해의 딸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영화의 중심 줄거리다.

2년이 지난 지금, <감기>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를 맞아 다시 주목받으며 일부에선 ‘재평가’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최근 다시보기(VOD) 서비스를 제공하는 ‘티빙’에서 <감기>가 인기영화 1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인터넷TV(IPTV)나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검색량과 구매량이 급증했다. 포털사이트 영화 코너에선 <감기>에 대한 새 감상평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오고 있다.

2년 전 영화 ‘감기’ 재조명되는 이유는

<감기>에 사람들이 뒤늦게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빠른 전염성과 높은 치사율의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란 점이 꼽힌다. 티빙 관계자는 “<감기>의 인기는 (메르스 사태가 불거진) 지난 1주일 사이 일어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전했다. 메르스에 두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의 심리 상태가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평점 다시 주기’ 등 대중이 영화에 대한 조직적인 재평가 조짐까지 보이는 배경엔, 전염병에 대처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기댈 곳이 없어진 시민들의 불안함과 분노가 영화와 현실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감기>에서 정부는 전염병에 대한 대처방식을 놓고 혼란상을 보인다. 일단 바이러스가 창궐한 분당은 철저하게 격리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분당을 지역구로 하는 정치인은 훗날 시민들이 자신에게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물을까봐 걱정한다. 선거에서의 표 득실을 계산하는 것이다. 또 사태가 심화될수록 재난 컨트롤타워인 정부 각료들은 극심한 의견 충돌을 보인다. 이런 장면들은 청와대·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갈등, 정부의 부실했던 감염 의심자 행적 및 인원 파악 등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이는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다.

또 영화에서 공포에 짓눌린 분당 시민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정부의 ‘정보 통제’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격리된 사람들에게 취해지는 향후 조치나 항생제 개발 상황 등은 이들에게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영화 속 각료들은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란 이유를 든다. 이런 정부에 반발해 들고 일어난 시민들에게 군은 총구를 겨눈다.

물론 영화 속 극적 표현이지만, 이런 장면들은 정부가 메르스 발생 지역과 병원을 일절 공개하지 않아 불안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해 ‘메르스 지도’ 만들기에 나서야 했던 최근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유언비어 단속’을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전개는 <감기> 외에도 <연가시> <괴물> 등 최근 회자되고 있는 한국의 재난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련의 재난 영화들은 일관되게 재난의 발생 자체보다는 향후 관리와 대처의 문제를 드러내 ‘인재’임을 강조한다”며 “메르스 사태가 대중들에게 이를 다시 환기시키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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